ARCHI./INFOR.2010. 4. 11. 14:04

리즈/Leeds

 
도시명 리즈/Leeds
위치 유럽/영국
인구/면적 723,100인(2005)/551.72㎢
테마 산업.물류
웹사이트 http://www.leeds.gov.uk/
 

 

김복환 l 리즈대학교 지리학과 박사과정
도시모델링으로 저명한 미국의 클라크(Keith Clarke) 교수는 인간에 의하여 유발되는 토지의 형태변화 중 가장 주요한 원인이 ‘도시화(urbanization)’라고 하였다. 한때 서울 잠실(蠶室)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던 대학교 동창이 당시의 잠실은 뽕나무 밭이었다고 하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잠실과 비교한다면 클라크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도시화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유엔의 인구통계 예측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30년까지의 인구증가는 61억 명에서 83억 명으로 약 22억 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고, 같은 기간의 도시인구는 29억 명에서 50억 명으로 21억 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도시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이상한 해석(물론 농촌인구의 도시 유입을 포함하지만)도 가능하다.

영국 중심에 위치한 리즈는 교통망이 잘 발달되어 있다 도시의 발달은 인간의 문명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학자들에 따라 그 기원을 BC 9500년 전의 터키 아나톨리아라고도 하고, BC 3000년 전의 메소포타미아나 나일강유역 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도시적 생활방식의 굴레에 강하게 구속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초 영국에서 비롯된 근대산업도시의 등장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도시성장은 산업혁명에 의해 촉발된 도시지역의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2차 인클로저 운동에 의해 농토에서 분리된 농민들을 스폰지처럼 흡수하면서 급속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산업도시의 대부분을 구성했던 공장노동자들은 값싼 노동의 대가에 의존하여 살아야 했다. 공중위생법(1848), 공장법(1833~1901), 도시계획법(1909) 등 당시로서는 개혁적인 조치로 약간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인프라문제, 환경과 교통문제, 소수인종문제, 계층간의 불평등문제 등은 여전히 도시에 사는 공동체들이 풀어야 하는 난제들로 남아 있다.

이상한 것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도시가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러한 도시가 만들어 내는 거대한 질서 또는 무질서(불편함)에 지배되어 이러한 도시시스템에 적응하거나 인내하고 살아야 하는 역구조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도시가 만들어 내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도시가 왜 성장하는가? 어떤 도시가 성장하고 어떤 도시는 쇠퇴하는가?

어떻게 하면 도시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이 개선되거나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 요즘은‘지속가능한’이란 표현으로 함축된다 유지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지속하여 왔다. 물론 지난 100여 년간 이러한 의문에 대해 많은 이론적인 연구(1)가 진행되어 왔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들을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이보다는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리즈라는도시를 놓고 이 도시가 근대산업도시로 성장해온 과정과 그 속에서의 도시문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현재의 모습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봄으로써, 이들이 가꾸어 내려고 했던 도시의 모습과 그 가운데 있었던 인간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다.

리즈시내 서북쪽의 모습많은 서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리즈의 기차역 모습
1. 리즈의 지리학적 위치와 일반현황
리즈는 지리학적으로 영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다. 리즈에서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딘버러까지가 북쪽으로 약 360km(200마일)이고, 남쪽으로 같은 거리에 잉글랜드의 수도인 런던이 위치하고 있다. 리즈는 또한 영국교통의 중심지다. 런던에서 시작하여 영국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주 간선도로인 M1 고속도로의 종착지이며, 영국을 동서 헐(Hull)에서 리버풀(Liverpool)까지로 연결하는 M62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리즈의 시내중심에서 시작하는 M621 고속도로를 타고 5분이면 이 두 고속도로와 만나므로, 리즈는 교통의 요지임에 틀림없다. 리즈의 면적은 562km2이며, 2001년 현재 인구는 71만 7천 명으로서 크기는 우리의 대전만하고(540km2) 인구는 대전의(140만 명)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인구를 기준으로 본다면 영국에서 런던(London)과 버밍엄(Birmingham) 다음으로 큰 대도시다. 1998년의 지역총생산량(GDP)은 약 19조 원이며, 1인당 GDP는 약 2,600만 원으로서, 경제규모로도 런던과 버밍햄 다음의 도시다.
2. 리즈의 성장역사
비록 리즈의 역사는 중세의 장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격적인 도시발전의 역사는 18세기부터다. 당시 리즈는 직물의 교역도시였다. 리즈에 직물산업이 발전한 원인으로는 우선 양들을 키울 수 있는 완만한 구릉의 목초지가 많았고, 이러한 양모를 세탁할 수 있는 물이 있었다. 또한, 양모를 나를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었는데 그것은 운하였다. 운하는 당시 낙후된 도로시설을 대신하고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화물을 운반할 수 있어(2) 전국적으로 발전하였는데 리즈는 에어(Aire)강이 중심에 있어 영국 동쪽의 항구인 헐과 운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직물거래를 위한 시장의 설립은 이 에어강 위의 다리에서 시작되었는데, 교역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18세기 중반에는 강 북쪽의 브리게이트(Briggate)와 콜(Call), 그 오른쪽의 커게이트(Kirkgate) 등으로 시장이 확대되었다.

18세기가 리즈라는 도시의 태동이라면 19세기의 리즈는 산업혁명으로 대표될 수 있다. 도심지는 공장과 공장노동자들의 주거지로 더욱 과밀화되었다. 부자들은 도심에서 탈출하여 외곽으로 빠져나감으로써 도시가 급속히 팽창하였고, 이로 인하여 토지이용의 분화가 나타나고 고착되어 갔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리즈의 직물산업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나, 인구의 감소를 겪는 다른 도시와 달리 리즈는 기계, 군수물품과 의류산업, 출판기계산업이 번성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이 설립(1813년)되고 상점이 생겨나면서 인구는 여전히 증가세를 보였다. 이러한 인구증가는 공장이 밀집한 도심의 모습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는데 우선, 시내에 상업시설이 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보어래인(Boar lane)에는 1867년에 쇼핑센터가 들어섰다. 노동자들의 주거지역은 도심의 동쪽인 동커게이트(East Kirkgate)나 도심의 서쪽인 웰링톤(Wellington), 홀백(Holbeck)쪽, 에어강 남쪽의 헌슬렛(Hunslet)으로 급속히 번져나갔으나, 이들의 삶은 극도로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그들은 열악한 근로환경과 지저분한 주거환경, 심각한 공해 속에서 제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어갔는데 1750년 영국남자의 평균수명이 31살, 여자의 평균수명은 33살이었다고 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도심에 자리잡고 있었던 도시빈민 주거지 당시 급격히 늘어난 공장은 에어강 남쪽의 헌슬렛, 시내 중심에서 서쪽인 홀백, 커크스톨(Kirkstall)과 시내 동쪽으로 요크로드(York road)를 따라 확대되어 갔으며, 이들이 내뿜는 연기는 북동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타고 시내전역에 검은 분진을 날렸다.

이에 성공한 상인들이나 공장주들은 보다 깨끗한 환경을 찾아 유일한 탈출구인 북쪽 또는 북서쪽의 민우드(Meanwood)나 해딩리(Headingley) 등으로 이주하였고 이들 신흥 부촌과 리즈 도심을 연결하는 오틀리로드(Otley road)가 1818년에 건설된다. 현재 이 도로는 A660 도로로 불리며 리즈에서 가장 정체가 심한 도로로 유명한데, 당시 이 도로는 유료도로여서 일반노동자는 부촌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도 어려웠다.

이러한 북적임 속에서도 재미있는 것은 시내 중심에 공원(열린 부지: Open space)을 조성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이러한 노력은 넘쳐나는 노동자들과 이들의 주택(Back to Back house)이 급속하게 확대되어 실현되지는 못했다. 지금 시내에 들어가 보면 빼곡한 건물들 주변에 잘 가꾸어진 잔디밭들이 눈에 띄는데 이러한 부지들은 20세기 도시재개발의 산물이다. 시내중심에 공원을 조성하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시내를 벗어난 외곽에는 커다란 공원들이 계획되어 아직까지도 보존되고 있다.

19세기의 이러한 토지이용 분화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는 도시교통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처음 도시교통수단으로 등장한 것은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버스로서 1840년에 부촌인 해딩리와 시내 중심간을 운행하였다. 그러나 이 버스는 요금이 비싸서 중산층들조차 이용할 수 없었으며, 1902년 전차(electrified tram)에 그 자리를 양보한다. 전차는 전기를 이용한 기술혁신으로 낮은 요금을 유지할 수 있어서 노동자들의 발이 되었고, 이는 도시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저렴한 요금과 많은 노동자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전차노선은 이후 확대되어 리즈의 시내교통뿐만 아니라 인근의 웨이크필드(Wakefield), 호스포스(Horthforth), 로스웰(Rothwell) 등으로 뻗어나가 도시간 교통수단으로의 역할도 담당한다.

물론 1830년대에 이미 기차가 도입되었으나, 그 연장이 짧았고 북쪽의 병풍과 같이 펼쳐진 높은 지형 때문에 크게 확대되지 못한 것과 비교하여 전차의 성공은 상당히 대조적인 성과였다. 또한 1920년에는 소규모 버스회사들 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나, 북쪽의 높은 언덕을 힘겹게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전차와 경쟁하기에는 기술력이 부족하였다. 이미 탄탄하게 형성된 전차의 진입장벽에 막혀 방사선으로 구성된 전차노선의 틈새를 메꾸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1930년 도로교통법(Road Traffic Act)에 의하여 작은 버스회사들이 큰 회사로 통합됨에 따라 보다 나은 장비로 전차와 경쟁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처럼 저렴한 대중교통의 등장은 도시의 외형을 급속히 변화시켰는데 우선 방사선으로 뚫린 전차선로 주변에 노동자들의 가옥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후 등장한 버스가 이러한 방사선의 틈새를 메워감에 따라 방사형 도시의 틈도 어느덧 중산층 도시인의 주택으로 채워졌으며, 특히 1970년 자동차가 급속히 보급됨에 따라 보다 부유한 사람들은 리즈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북쪽방향으로 보다 더 멀리 이주하여 부도심권을 형성하였다. 이들이 이주한 리즈의 북쪽지역과 북서쪽지역의 주택가격은 아직도 리즈에서 가장 높다.
3. 근대 도시재개발의 노력
리즈의 곳곳에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Briggate의 상점

20세기 바로 전까지 이루어진 리즈의 토지이용 분화는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리즈의 도심은 상업과 시장지역으로 변모되었으며, 제조업은 도심인근의 세 지역으로 밀집되기 시작했다(운하와 기차역에 가까운 에어강 남쪽에는 중공업지역, 도심에서 2km 정도 서북쪽에 위치한 민우드와 타너리(Tannery)를 중심으로 한 염색과 의류산업, 도심 서쪽의 헌슬렛과 홀백의 경공업과 중공업지역). 이러한 공장지대 사이를 노동자들의 주택인 Back to Back house가 리즈 도심에서부터 동심원의 띠를 이루며 밀집해 있었고 조금 부유한 사람들은 파 해딩리(Far Headingley), 라운드해이(Roundhay) 등 더 외곽에 띠를 이루며 거주하였다.

도심지에 위치한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으나, 이들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개선은 천천히 진전되어 갔다. 그것도 불결한 환경이 노동생산성을 감소시킨다는 사용자들의 우려가 크게 작용하였다. 사실 1909년까지는 도시계획법이 없었으므로, 노동자들의 가옥이 공장, 창고 등과 마구 섞여 있는 무질서한 도시구조의 탄생은 자연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도시구조중에서 가장 문제였던 것은 역시 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이었다. 이들의 주거는 2차대전 당시의 전쟁포로막사를 연상시키는 집단거주시설로, 내부는 2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침실이고 나머지는 부엌 겸 화장실 겸 마루인 다용도 방이다. 이러한 형태의 가옥구조는 1909년까지 7만 채에 달했으며, 리즈 인구의 80% 이상이 이러한 집에서 거주했었다고 하니, 20세기 도시재개발의 노력은 당연히 이러한 불량가옥의 철거를 통한 도시빈곤층과 산업의 도심외곽 이전에서 시작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1900년대 초에는 당장 주택부족문제가 심각하여 이러한 도심재개발을 시행하지 못하고, 서북쪽의 민우드나 남쪽의 미들톤(Middleton) 등의 주택공급에 치중하다가 1939년에 이르러 드디어 도심 서쪽에 위치한 3만 채의 불량주택을 철거하기 시작한다.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리즈 남쪽으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계획은 쿼리 힐(Quarry Hill Flats)에 대규모 플랫의 건설로 절정에 달하는데 이는 1천 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공동주택으로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비슷하다. 상수도와 하수도가 개별 호마다 공급되었고, 주변의 82%가 녹지로 조성되었으며, 병원과 상가가 단지 내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구조는 당시 대량의 도시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유토피아적 사상이 배경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영국인들의 생활방식과는 어울리지 않음이 증명되었고 도시의 흉물로 남아 있다가 최근 철거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만 해도 아직도 도심에는 수많은 도시빈민의 주거지가 있었고, 이들 중 대부분은 주거조건 미달로 철거대상이었다. 1948년 총 15만 4천 채의 가옥 중 주거조건 기준미달로 철거되어야 할 집은 9만 채였다고 하니 아직도 3채 중 2채는 철거되어야 했고 이들 중 6만 채 가까이가 도시노동자의 Back to Back house였다. 2차대전 이후 리즈의 도시발전은 외부 순환도로 바깥 쪽에서 이루어졌다. 고급 개인주택이 리즈 북쪽에 건설되었으며, 동북쪽의 시크로프트(Seacroft)와 윈무어(Whinemoor)에는 산업단지와 주거단지를 포함하는 자족적인 미니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9만 명이 거주한다.

도심에서 도시빈민주택이 점차 철거됨에 따라 시내의 재개발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우선 시내에서 북서쪽 구릉지대에 단일의 포괄적인 계획입지가 들어섰는데 이는 리즈 의과대학의 외래병동과 리즈대학, 리즈메트로폴리탄 대학의 대학건물이 들어서고 확장되면서 교육시설 단지를 형성하게 된다. 리즈 도심부 중심상업지역의 발전은 1924년 리즈 시내를 동과 서로 잇는 중심도로의 관통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도로 이름도 역시 중심도로와 어울리게중심되는 줄’인 헤드로(Head Row)다. 이 도로는 리즈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4차선으로 곧게 뚫린 대로다.

1960년대 이후 이 도로의 좌우로 현대식 상업과 쇼핑센터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는데 메리온 (Merion)센터, 세인트존스(St. Johns), 빅토리아쿼터(Victoria Quarter) 등의 쇼핑센터들이 그것이다. 시내중심에 위치한 브리게이트(Briggate)를 포함한 고전적인 올드타운거리의 내부는 전부 보행자 전용도로로 설정되어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이들 거리의 상점은 전통적인 형태와 현대적 건축물의 세련됨이 조화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현재 리즈 도심(City centre)은 상점과 백화점, 호텔, 문화시설이 밀집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만 창출되는 고용인구는 리즈 전체의 30% 정도로 12만명에 달한다. 도시재창출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즈는 아직도 후기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도시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심의 주변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장기임대주택(Council House)이 밀집되어 있어 차량, 주택절도 등의 범죄가 극심하며, 교통문제도 심각하다. 사실 교통혼잡은 우리와 비교해 볼때 전혀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리즈는 벌써부터 버스전용차선, 버스우선신호제도, 버스독점차선(도로 한복판에 버스만 다니는 차선이 있다. 벽돌을 쌓아 경계를 만들어 다른 차량은 진입할 수 없다), 2인 이상 합승차량 우선통행 차선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으며, 벌써부터 수퍼트램이라고 하는 경량전철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보다 심각한 것은 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이주해 온 소수인종들간의 분리현상이다. 리즈에는 2001년 현재 5만 8천 명(리즈인구의 8.2%)의 소수인종이 있으며 이들 중 절반은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지의 중부아시아인들이고, 흑인이 1만 명, 중국인이 3,500명 등이다. 이들은 절대다수의 백인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사회저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때로는 자신들끼리 모여 울타리를 치고 사는 분리현상과 부정적 사회문제를 만들어낸다. 몇 년 전 브라드포드(Bradford)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인종의 폭동에 동조하여 리즈 북동쪽의 헤어힐(Harehill)에서 동조폭동이 있어났었고(이곳은 아시아계 인종들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흑인들이 주로 밀집되어 있는 도심이나 리즈대학 주변에 범죄율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리즈의 지역간 소득불균형 문제도 심각하여 33개의 워드(Ward, 우리의 구청수준) 중 6개의 워드가 영국에서 제일 가난한 지역 10%에 포함된다.
4. 리즈를 변화시키는 힘
녹스(Knox) 교수는“도시는 인간과 이를 둘러싼 환경과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설명하였다. 한 도시의 성장에는 자연적, 지리적인 환경적 특성과 더불어 이러한 환경에 직면한 인간들의 노력 등이 종합된 결정체라는 것이다. 리즈의 역사를 보면, 이들이 만들어낸 과거의 슬픈 역사와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들의 노력이 배어 있다. 리즈는 현재 산업혁명의 근대산업도시로부터 탈바꿈하여 서비스부문이 총부가가치와 고용의 80%를 차지하는 후기산업사회의 중심적인 도시로 성장하였다.

엘빈토플러의 저서‘제3의 물결’에서는 인류의 문명이 공업혁명에서 정보혁명으로 전환되어 간다고 하였다면, 리즈의 역사는 어쩌면 이를 실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리즈에는 풀어야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어쩌면 카우버(J.M.Cower)의“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라는 말과도 같이 도시의 본질과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자연의 그것과도 같이 복잡다기하여 단순한 논리로는 그 생리와 운동법칙을 풀어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앞으로 또다시 몇 십년 후에 다시 리즈를 보게 된다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http://211.187.141.176:81/2009/php/wurban/city_info_intro.php?no=126&frommain=1

'ARCHI. > INFO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라지는 근대문화유산]도시개발, 자본 아닌 문화논리로 접근  (0) 2010.04.10
도시개발의 역사  (0) 2010.04.10
DATA  (0) 2010.03.07
도심 재생(Urban regeneration)이란?  (0) 2010.03.04
그외..  (0) 2010.03.04
Posted by 살구ISUE
ARCHI./INFOR.2010. 4. 10. 10:07
[사라지는 근대문화유산]도시개발, 자본 아닌 문화논리로 접근해야]
개발의 열풍 역사문화공간 사라진다
[2007.06.07 23:01]

21세기 울산이 아름답고 경쟁력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사·문화자산에 대한 재발견과 더불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사진은 재개발이 한창인 중구 우정동과 유곡동 전경.
잇단 재개발 울산 원도심 상실 위기
근대유산 막무가내 개발 재고돼야
낙후지역 개발 '솔로몬 지혜' 절실


21세기 도시의 경쟁력은 문화가 결정한다.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확보하고, 연중 문화체험이 가능한 도시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60년대 '불도저식' 개발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갖춘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로의 발전을 지향하는 울산, 역설적이라 할 수 있는 산업과 환경이 함께 발전하는 한편 역사성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품격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미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에 재정립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고 정체성을 갖춘 도시로 발전시켜 나가는 중요한 구심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의 근대 역사 문화유산(건축물, 장소)을 도시의 재발견 측면에서 조명하고, 일본과 국내 주요 도시의 근대문화유산 보존운동을 통해 미래 울산이 나아가야할 도시 개발 전략을 모색해 보는 연재물을 시작한다. 편집자주


울산시 남구 장생포항 일원. 국가공단에 둘러싸여 잿빛 하늘과 매캐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하지만 한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 울산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간직하고 있는 무대다. 해안도로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진 고래음식점, 산기슭까지 올라간 뒷골목의 70년대식 집. 아직도 당시의 주거 및 건축 양식이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원형을 찾아보긴 어렵다. 그 옛날 고래 도시였음을 알려주는 흔적은 오히려 최근 건립된 고래박물관과 그리고 박물관 옆에 복원해놓은 포경선, 장생포초등학교 운동장 입구에 설치된 40여년전 고래작살 등이 고작이다.

근대 울산의 기억을 가장 많이 간직한 울산시 중구 우정·성남·교동 등 구시가지 일원. 재개발이니 혁신도시니 하면서 근대 울산의 역사가 담긴 도로와 건축물, 집자리, 골목길 등의 소중한 문화유산도 이미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장생포나 구시가지 뿐만아니라 울산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유산, 관공서와 학교, 일본식 주택, 62년 울산시 출범이후 대거 들어선 수많은 공장사택, 시영·국민주택도 거의 사라졌다. 신석기니, 구석기, 청동기, 신라, 고려, 조선 등 오랜 역사를 가진 유산만이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해온 탓에 근대건축물 등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미처 자리잡지 못한 탓이다.

도시의 공간(장소)마다 역사가 있고 주민들의 삶이 녹아든 문화가 있기에 도시는 곧 역사문화공간이다. 도시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장소·문화 마케팅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경쟁력 갖춘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쇠퇴도시의 대명사 대구시의 노력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시는 올초 5년에 걸쳐 전통 공간과 근대 건축물, 고택·종택, 테마골목, 역사거리 등을 총 망라한 '대구新(신)택리지'를 제작했다. 거시적 역사가 아니라 현재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시민들의 생활사와 공간과 장소 등을 미시적(微視的·개별적 부분적으로 역사를 살핌)으로 도시를 재발견한 것이다.

울산대 김정민 교수는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불도저식 개발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면서 이는 "근대문화유산을 지역·장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옛 것을 다 부숴버리고 정적이고 점과 같은 문화재만 남긴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며 "오래되고 낡은 것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결국 남는게 없게 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근대문화유산은 단일 건축물 뿐만 아니라 당시의 도시조직, 예컨대 주작대로, 작은 골목길, 민초들의 삶의 모습 등도 생명력을 가진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낙후지역 개발을 열망하는 주민들에게 '무조건 보존'이라는 희생을 강요할수는 없다. 관과 주민들간 머리를 맞대고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야만 개발과 보존의 공존이 가능하다. 그것이 곧 역사의 보존이라는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은 관광자원이 되고 문화사업이 되어 경제적 혜택으로 돌아오게 된다.

60년대 중·후반부터 공업화라는 특수한 상황아래서 도시계획으로 개발된 남구 신정동과 달동, 옥동 일원. 서민들의 단독주택이 대거 들어섰던 이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개발돼 주변 지역과의 섞이지 않으려는 경계화·계층화라는 이질적인 문화를 낳고 있다.

김 교수는 "도시개발은 자본의 논리보다는 문화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그런 면에서 단독주택, 아파트, 연립 등 다양한 주택을 골고루 공급해 특정계층 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다양한 소득계층, 인종,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뉴 어바니즘(new urbanism·) 운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탐사보도팀

김창식기자 goodgo@ksilbo.co.kr

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자문=김정민 울산대 교수


'ARCHI. > INFOR.'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대산업도시에서 후기산업사회 중심지로 성장하는 리즈 Leeds  (0) 2010.04.11
도시개발의 역사  (0) 2010.04.10
DATA  (0) 2010.03.07
도심 재생(Urban regeneration)이란?  (0) 2010.03.04
그외..  (0) 2010.03.04
Posted by 살구ISUE
ARCHI./INFOR.2010. 4. 10. 06:18
출처 : http://blog.naver.com/jangbin99/80008538981

都市開發의 歷史

 


1) 근대이전의 도시개발


  고대문명 발생시기


  고대도시는 나일(Nile)강, 티그리스 유프라테스(Tigris-Euphrates)강, 인더스(Indus)강, 황하(黃河) 등의 비옥한 하천유역에서 농경, 어획, 편리한 수상 교통을 기반으로 발생한다.
  고대도시는 정치, 군사, 문화의 중심을 이루면서 성장하였으며 집락(集落)의 규모가 커지고 발전하면서 부족간, 지역간에 종교 등으로 인한 분쟁과 대립이 빈번하였다.
  자체적 방어수단으로 보루형(堡壘形) 성벽이 축조되고, 집락의 지배계급과 지배자가 출현하여 권력을 강화하고 군림하였다.
  이 시기의 도시형태와 시설 등의 도시개발은 통치자의 의지가 반영되어 나타났으며, 노예경제를 바탕으로 세워진 전제군주제도의 채택과 하천과 관련된 토목기술 등의 학문에 의해 발달되었다.
  나일강 연안의 이집트(Egypt)는 세계 최초의 도시형태를 갖춘 고대왕국의 수도멤피스(Memphis)와 신왕국 테베(Thebes), 그리고 B.C. 3,000년경 피라미드 건설을 목적으로 노예, 기능인을 수용하기 위해 건설된 카훈(Kahun)이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주변의 장방형 성벽, 격자형, 가로망, 광장, 궁전, 신전, 공공건축물을 미관적으로 배치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어 강의 범람이 잦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방은 제방, 운하 등의 토목공사 기술이 발달하였고 관개농업이 이루어졌으며, 항해술의 발달로 상업이 성했다.
  대표적인 도시로는 B.C. 8세기경의 바빌로니아(Babylonia)의 수도 바빌론(Babylon)을 들 수 있다. 이 도시는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13km에 이르는 벽돌조 성벽, 왕궁, 신전, 포장도로, 성탑등이 장엄하고 화려했다.
  인더스강 유역의 모헨조 다로(Mohenjo-Daro)는 규격화된 소성벽돌이 사용된 계획도시로서 배수설비, 포장도로가 알려져 있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도시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폴리스(Polis)의 집합체로 구성된 그리스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평야지대에 위치했다.
  도시국가형태의 그리스는 지대가 높은 구릉지 언덕에 신을 모시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를 성역으로 만들었다.
  도시 중심부에 아고라(Agora)를 배치하여 시민들의 교역, 사교, 민주 정치장, 집회장으로 활용하였다. 아고라 주변에는 신전, 극장, 시청 등의 공공건물이 위치하였고 그 외곽으로는 중정식 폐쇄형 시민주거를 건설하고 주변에 성벽을 축소하였다.
  그리스의 도시들 중 아테네(Athens), 스파르타(Sparta), 코린트(Corinth) 등의 오래된 도시들은 불규칙하고 협소한 가로망의 형태였다.
  지중해 연안의 식민도시 밀레투스(Miletus), 프리엔(Priene),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등은 격자형 도로망을 바탕으로 세워졌으며, 도시시설 및 건축의 예술성이 찬란한 도시들이었다.
  그리스의 도시규모는 대개 인구 1만∼1만 5천명 내외였으며, 과잉인구는 지중해 연안으로 진출하여 건설한 식민도시에 수용하였다.
  식민상업도시의 계획에 있어서 기본이 된 것은 도시계획가 히포다무스(Hippodamus)에 의해서 발전된 격자형 도로망 패턴이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도시에서 시작된 격자형 도로망을 발전시켰던 것으로서 이를 바탕으로 도시의 자연적 상황을 고려한 도시구성계획을 시행하였다.
  지역제를 도입하여 주거지역, 공공지역, 상업지역을 구분하고, 도시하부구조인 상 하수도를 도시 내에 설치함으로써 훌륭한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리스시대의 도시들 중 가장 체계적인 격자형 가로체계와 도시구성이 이루어진 도시로는 올린투스(Olynthus)가 있다. 이 도시는 초기에는 불규칙적인 형태였으나 도시성장에 따라 5세기경에는 완전한 격자형의 도시체계를 갖추었다.
  로마는 정치적 조직체인 소도시국가연합체 성격의 그리스와 같이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형태를 기반으로 제국을 건설하였다.
  로마의 도시는 아고라에 해당되는 시민광장 포럼(Forum)을 중심으로 하여 불규칙한 방사형 도로와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Coloseum), 바실리카(Basilica) 극장, 카라칼라(Caracalla) 욕장(浴場), 판테온(Pantheon) 등의 신전과 개선문 등의 기념시설 및 공공건축물을 축조하였다.
  로마의 신도시는 주로 식민도시들로 이루어졌으며, 대표적인 도시유형으로는 콜로니아(Colonia)와 뮤니시피아(Municipia), 시비타스(Civitas) 등이 있다.
  군사기지의 성격을 지닌 카스트라(Castra)가 있었는데, 이 도시는 적의 공격시 군대의 보급기지와 본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병영도시였다. 이 도시의 특이한 점은 군대가 이동한 뒤 그 지역이 그대로 도시로 발전하여 현존하는 유럽도시의 기본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도시들은 정연한 격자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중심부에 행정중심이 배치되어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계획가로는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있다. 그는 주로 위생, 편리, 군사적인 고려에 중심을 두었으며, 그의 건축십서(Ten Books on Architecture)는 르네상스의 이상도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마시대의 도시들은 그리스시대에 비해 도시의 상 하수도 위생설비가 훌륭하게 구비되어 그리스시대의 도시들보다 도시수용인구가 더욱 확대될 수 있었다.
  비산업적 인구의 도시집중과 배급에 의존하는 국민과 노예, 그리고 정치인으로 구성된 산업구조의 불균형, 사치와 향락정치, 사회적 부패로 인하여 매우 불건전한 도시로 변모하였고, 5세기경 쇠퇴하였다.

 


  중세의 도시


  중세도시의 특징은 영주들 간의 영토확장 등 분쟁을 위한 도시형태로서 한 마디로 표현해서 성곽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중세도시는 다른 시대의 도시와 다른 폐쇄적 사회로 특징지어진다.
  방어수단의 교외 구릉지에 위치한 요새 및 성벽축조, 불규칙하고 굴곡이 심한 비포장의 가로망, 목조위주의 시민주거건축은 중세도시들의 대표적인 도시내용이 되었다.
  프란시스코(Francisco) 수도원을 비롯한 많은 성당건축물들은 석조, 벽돌조로 건축되어 예술성이 돋보였으며, 이에 따라 중세도시는 성당도시의 색채를 띠었다.

 

                                   (그림1) 엑스터(Exeter)               

                                   (그림2) 칼리스레(Carlisle)

 

  중세의 도시는 그 기능적인 성격으로 보아 일반적으로 성채도시(城砦都市), 정기시도시(定期市都市), 상업도시(商業都市) 등으로 구별할 수 있으나 도시의 규모는 대부분이 소규모로서 큰 도시라 할지라도 인구 10만명을 넘지 않았다.
  중세도시의 형태는 역사적 기원, 지리적 환경, 발전형에 따라 3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 로마제국시대로부터 계속되어온 도시로 보통 중심부에서 직교형 설계를 유지하고 도시의 발달에 따라 이 직교형 부분에서 서서히 외부로 향해서 확대된 것이다.

  둘째 : 그 이전의 문화를 뚜렷이 계승하지 않은 도시로 불규칙적이고 무질서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중세도시는 이러한 자연발생적 도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 계획적 설정도시(設定都市)로서 그 대부분이 격자형으로 설계되었고 중심부에 시장과 광장을 둔 것이다.
  도시의 위치선정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중세 초기의 도시들은 주로 구릉에 성곽을 구축한 성곽도시들로서 그 크기가 소규모였고 한정된 크기를 가졌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성벽을 도시의 주변에 건설하거나 토지를 획득하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종종 있었다.
  반면 중세 후기의 도시들은 주로 해안 및 하안에 위치한 상업도시들이다. 이는 중상주의를 바탕으로 한 당시의 대외무역이 선박을 이용한 해상교통에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후기의 도시들은 이전에 비해 보다 개방적인 도시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대표적인 상업도시로는 해상무역을 제패하고 동방제국과의 무역의 근거지였던 베니스(Venice), 십자군의 병참수송기지로 번영하였던 항구도시 제노바(Genova), 알프스산을 넘는 육상교통의 중핵이었던 밀라노(Milano), 공업과 금융업의 중심이었던 프로렌스(Firenze)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독일의 함부르크(Hamburg), 마인쯔(Mainz), 프랑크푸르트(Frankfrut) 등이 당시의 상업도시였다.

 


  근세의 도시


  농노(農奴)와 봉건주의(封建主義)를 바탕으로 한 중세국가는 대자본에 의한 중상주의(重商主義)와 대량생산, 그리고 공업화 등의 시대변화에 의해 쇠퇴하였고 근세는 국가경제형태로 변모하였다.
  14∼15세기에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 영향을 미친 르네상스(Renaissance) 운동의 결과로 기독교적 속박으로부터의 인간성 회복과 인본주의 정신의 강조, 신세계를 동경하는 문화확산, 그리스 로마시대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건축 등에 대한 복고의식이 강하게 나타났다.
  도시는 근세 화약의 발명으로 도시의 공격과 방어의 개념이 변화되면서 성벽과 같은 요새(要塞)위주의 도시건설이 지양되었다.
  공공정신과 도시 배경미를 강조한 르네상스 정신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형태면에서는 중심선과 축, 형식미, 건축미가 특히 강조되었다.
  15∼16세기경에는 많은 이상도시안들이 대두되었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폐쇄형으로 된 다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면의 형태는 대부분이 성형(星形), 8각형, 5각형 등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폐쇄형의 도시는 결국 도시의 수평적인 확대를 방해하여 당시의 많은 도시들이 높은 인구밀도를 나타내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어났다. 지배계급은 자기의 부와 권력을 자랑하기 위하여 도시의 형태에 강한 중심축을 가지고 좌우대칭으로 배치하는 기하학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도시미의 정형을 이루게 되었다.
  도로와 광장은 근세도시의 형태를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도로는 중세의 협소하고 굴곡이 심한 불규칙한 형태에서 가로에 접한 대지의 이용률 증대와 공동구 설치, 도로정비의 효율성 등 교통계획에 이점이 많은 격자형으로 전환되었고, 지형에 우선한 직선광로가 건설되었다.
  광장은 전정(前庭)광장, 시장(市場)광장, 기념광장, 교통광장, 근린(近隣)광장 등의 형태로 건설되었고, 조경 및 장식적 기념물 배치 등으로 도시미의 중심을 이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독일의 칼스루에(Karlsruhe)가 있다. 이 도시는 보루형 도시에 방사선도로를 도입하였는데, 왕궁을 중심으로 32줄의 방사선이 도시주변의 환상도로를 향하여 뻗어나게끔 설계되었다. 환상도로는 완원(完圓)을 이루고 있으며, 방사선은 직선도로로서 기하학적 형태로 짜여져 있다.
  근세 도시개발사에서 주목할 사항으로는 오스만(G. E. Haussmann)의 파리개조계획이 있다. 이 계획은 파리 가옥의 3/7을 파괴하는 철거위주의 방법으로 도시전체의 조직적인 개조가 저해되었지만 도시설계의 모든 구상을 현대도시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기술적인 문제로서의 공적은 컸다.

                                   (그림3) 하미나(Hamina)

                               (그림4) 칼스루에(Karlsruhe)

 

 


2) 근대의 도시개발


  근대도시개발의 흐름은 영국에서부터 근간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도시개발의 방향은 크게 전환되었는데, 도시가 인간의 경제적활동 및 사회적 활동의 장소로 파악되었고, 복잡한 도시기능을 갖게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인구와 산업의 도시집중을 치밀한 계획 없이 받아들여 엄청나게 비대해졌을 뿐만 아니라 주택문제, 교통문제 등의 사회문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19세기 후반의 이상주의적 도시개발계획에서 시작되었으며,
  20세기 초반의 전원도시 개발 및 근대도시운동의 전개를 통하여 현재의 신도시 및 도시재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도시의 발생과 도시개발


  산업도시는 산업혁명의 제 변혁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 당시의 급격한 변혁은 다양한 도시문제를 야기했으며, 이러한 도시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산업도시발전의 동기가 되었으며,
  농촌에서 도시로의 노동자 집중현상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였다. 급격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과 상업인구의 폭발적 증대는 과밀주거군인 슬럼가를 형성하였으며, 이로 인해 빈곤 및 위생문제 등의 사회적 문제가 유발되었다.
  도시의 과밀주거는 도시의 스프롤(sprawl) 현상을 유발하였고 그 결과 도시의 무질서한 거대화가 야기되었다.
  이러한 상황하에 도시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상도시계획안들이 속출하였는데, 이들 계획들 중 대표적인 계획으로는 레도우(Ledoux)의 쇼우(Chaux)와 오웬(R.Owen)의 공장촌계획, 푸리에(C.Fourier)의 팔란스테르(Phalanstere), 버킹험(J. S. Buckingham)의 모델도시 빅토리아(Victoria), 솔트(T. Salt)의 솔테어(Saltaire), 리차드슨(Richardson)의 헤이지아(Hygeia), 풀만(Pullman)의 모형도시(Model Town), 소리아 이 마타(A.Soria YMata)의 선형도시(Linear City), 가르니에(T. Garnier)의 공업도시(Une Cite Industrielle) 등이 있다.

                                      (그림5) 쇼우(Chaux)         

                                  (그림6) 빅토리아(Victoria)

 

  산업혁명과 때를 같이하여 발생한 도시문제가 자유방임주의와 자유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나타난 것이었기에 본질적으로 자유방임주의와 자유경쟁 속에서 도시문제해결은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도시안들은 현대도시의 공간적 구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오웬의 이상도시안은 현대적인 도시기능에 부응하기 위하여 제안된 전원도시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전원도시의 전개와 그 영향


  영국의 근대도시화과정에서 표출된 것은 도시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산업시설의 집적지에 혼재함으로써 나타난 도시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이었다.
  1898년 하워드(E. Howard)는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으로 건강생활을 유지하면서 도시민에게 작업과 여가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전원도시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전원도시의 구성은 58,000여명의 소도시 인구규모로서 방사 환상형의 시가지 패턴을 갖고 있다. 토지이용과 시설배치의 형태는 첫째, 중심부에 광장, 시청, 박물관 등의 공공시설이 배치되고 둘째, 면적 400ha의 중간지대에는 주택, 학교, 교회가 배치된다. 셋째 2,000ha 규모의 농경지대로 구성된 시가지 외주부는 임대농장, 대농장, 목초지 등으로 구성된다.
  하워드의 이러한 전원도시계획안은 후에 위성도시 및 근린주구이론, 나아가 신도시개발의 밑거름이 되었다.
  개발이익의 사회환원과 토지소유의 공유, 지역제의 시도와 전원적 도시환경의 유지를 위한 녹지설정 등의 계획내용은 근대적 도시개발의 계획수법에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하원드의 계획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불러일으킨 바, 1904년에는 런던에서 54㎞ 떨어진 곳에 최초의 전원도시인 레치워스(Letchworth)가 언윈(R. Unwin)과 파커(B. Parker)에 의해 건설되었다.
  1920년에 두 번째의 전원도시인 웰윈(Welwyn)이 런던 북쪽 36㎞ 지점에 건설되었다.
  하워드의 전원도시운동은 당시의 대도시 인구집중에 대한 인구분산정책의 해결방안이 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교통의 발달과 지역적 확대로 근본적인 개발방향으로는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웰윈에서 계획의 현실성과 개발의 합리성을 제시하여 정부 당국으로부터 도시분산정책과 신도시개발정책의 하나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1946년에 신도시법(The New Towns Act)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전원도시운동의 파급효과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나라의 근대적 도시개발의 방향 제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며, 각국에서 위성도시 및 신도시의 개발방향으로 계승되었다.

                             (그림7) 하워드의 전원도시계획안      

                                    (그림8) 웰윈(Welwyn)


  위성도시(satellite town)의 개념이 처음으로 근대도시계획에 대두된 것은 1918년으로 전원도시운동의 주창자들에 의해서였다.
  위성도시는 중심도시로부터 그린벨트에 의해 지리적으로 분리되면서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중심도시로 연결된 독립도시를 의미한다. 즉 모도시(mother town) 주변에 입지한 단일성격의 중심을 가진 소규모의 도시로서 모체도시의 기능을 보완하는 위성과 같은 도시를 말한다.
  1920년대에 위성도시안을 제안한 사람들은 테일러(G.R. Taylor), 언윈(R.Unwin), 휘이튼(R.Whitten), 라딩(A.Rading) 등이 있다. 미국의 테일러는 점차 능률이 저하되는 대도시에서 교통이 편리한 주변지역으로 기존 도시의 공업시설 이전을 주장하였다. 그는 새로운 공업지 인근지역에 산업 종사자의 주택을 중심으로 하는 주택지개발과 아울러 도시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도시개발을 주장하였으며, 이를 위성도시라고 하였다.
  도시구성을 위한 생활권형성개념에 따르면 위성도시는 일생활권(日生活圈)에 필요한 소요 도시서비스를 해결하고, 여타의 주생활권 서비스는 중심도시인 모도시에서 제공함을 원칙으로 계획되었다. 그후 1923년 미국의 휘이튼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광역계획구상에 위성도시의 계획수법을 적용하여 대도시계획안을 작성 발표하였다.
  위성도시의 기본계획구상은 하워드가 제창한 전원도시에서 근간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전원도시가 전원 속에서 일상생활을 위한 자급자족의 신도시라 할 때 위성도시는 대도시 주변에 별도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대도시를 모체로하여 기능의 일부를 분담하는 예속된 신도시를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도시미운동과 근린주구 단위계획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은 거대한 공업화의 물결 속에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도시들은 오염되고 도시생활은 매우 불안전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계획가 번햄(D. H. Burnham)은 거대한 공업도시의 추악함은 도시예술의 훌륭한 작업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만국박람회장의 설계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그는 도시를 아름다움과 질서, 체계, 조화를 통해 예술적으로 계획했으며 고전적인 미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도시미운동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
  도시미운동은 1900년에서 1910년에 미국의 도시계획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도시의 아름다움을 통한 개발뿐만 아니라 문화적이고 예술적이며 환경적인 도시개발운동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의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등은 고전적이고 화려하며 예술적인 도시미를 갖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동차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하워드의 전원도시사상을 추종한 미국의 스타인(C. Stein), 라이트(H. Wright), 멈포드(L. Mumford)와 같은 계획가들은 도시내 자동차의 급속한 증가 속에 자동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여 왔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안된 1923년의 슈퍼블럭(super-block)개념은 기존의 격자형 도로를 제거하여 12∼20ha 규모의 자동차 없는 주거환경을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1928년 미국의 페리(C. A. Perry)는 근린주구를 지역성이 유지할 수 있으며 영국의 작은 마을처럼 민주적인 참여가 가능한 하나의 사회단위로 인식하였다.
  모든 건물로부터 4분 거리의 중심부에 커뮤니티 센터와 학교, 기타학원을 갖춘 5,000명 규모의 독립적인 근린주구를 주장하였다.
  근린주구는 밀도가 100/ha 이내의 주구에 도로가 단지내를 관통하지 않는 가구(街區)로 되어 있다. 또한 가능한 한 보차분리를 시키며, 단지내 통과차량을 저지하기 위하여 도로는 대개 쿨데삭(cul-de-sac)이나 루프(loop)형으로 이루어진다.
  근린주구 기본사상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초부터 주택지계획의 공간 구성에 관한 이론전개와 시행계획을 구축한 스타인과 라이트에 의해서였다.
  하워드가 영국에서 전원도시운동에 전념하고 있을 때, 스타인은 적은 규모의 주택지개발에 보다 구체적이고 진취적인 방법으로 계획이념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림9) 페리의 근린주구이론        

                                (그림10) 래드번 종합개발계획

 

  미국의 도시지역은 기술문명의 이기(利器)이며 산물인 자동차에 의한 환경파괴의 위협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스타인과 라이트는 도시생활의 안전을 꾀하고자 1928년 래드번(Radburn)계획을 실현하였다.
  래드번 개발계획은 주택, 도로, 공원 녹지공간, 건물 블록 및 주구중심지와의 관계를 과거의 공간구성과 배치개념에서 탈피하여 슈퍼블럭의 계획, 기능별 도로망계획, 보차분리 등의 새로운 기본구상이 도입되었다.
  근린주구의 기본이념은 근대도시의 주택지계획과 나아가 신도시개발계획의 기본적 요소가 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1944년 아버크롬비(P. Abercrombie)는 대런던 계획(Greater London Plan)의 수립에서도 커뮤니티 계획의 중요 내용이 근린주구개념이라고 하였으며, 이를 위해서 주구의 규모를 인구 6,000∼10,000명으로 계획, 한 개의 초등학교를 배치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1963년 주구내의 생활안전과 편리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개발된 계획인구 11만 명의 콜롬비아(Columbia)도 페리의 근린주구이론의 적용에 충실하였다.

 


  근대도시운동의 전개


  전원도시사상에 대한 반발로서 르 꼬르뷔제(Le Corbusier)와 기디온(S. Giedion)등에 의한 새로운 도시형태가 제안되었다. 르 꼬르뷔제는 영국의 전원도시에 대하여 도시확장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토지와 도시개발의 시간적 낭비를 초래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1922년 인구 300만 명의 대도시계획안을 발표하였다.
  그가 주장한 이상도시는 광대한 오픈스페이스에 둘러싸인 장대한 마천루(skyscraper)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였다. 도심에는 3,000명/ha의 인구를 수용하는 60층의 건물이 숲을 이루고 그 건폐율은 불과 5%로서 중심에는 철도나 비행기를 위한 교통센터가 배치되었다.
  마천루 주변에는 아파트지구가 있어 8층의 연속주택이 광대한 오픈스페이스 속에 이것을 둘러싸듯이 배치되었으며, 인구밀도는 300명/ha였다.
  1925년에 그는 이 계획안을 파리중심부를 위한 개조계획인 보아잔 계획(Plan Voisin)에 적용했고, 1933년 빛나는 도시(Ville Radieuse)의 계획에서도 이 발상을 전개하였다.
  르 꼬르뷔제의 계획사상은 당시의 많은 도시계획가와 건축가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그를 중심으로 1928년 근대건축국제회의(CIAM ; Congres Internationanxd'Architecture Moderne)가 개최되었다.
  르 꼬르뷔제는 도시를 '살고', '일하고', '위락하고', '교통하는' 네 가지의 기능화를 통해 태양과 녹지와 공간을 다시 사람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빛나는 도시를 건설하려 하였다.
  초기의 CIAM의 구성원들은 공론가(空論家)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였으나, 이들에 의해 시작된 도시계획의 수법으로는 지역지구제, 인동간격, 그린벨트, 보차분리, 근린주구, 건물의 고층화 등이 있다.
  CIAM의 정신에 의해 세워진 대표적인 도시로는 샹디가르(Chandigarh)와 브라질리아(Brasilia)가 있다.
  샹디가르는 르 꼬르뷔제가 직접 계획한 도시로서 인체의 모습에 바탕을 두어 계획되었으며, 도로는 각각의 성격과 스피드에 따라 분리한 V7원리에 의해 계획되었다.
  브라질리아는 코스타(L. Costa)의 기본계획으로 건설되었으며, 비행기의 모습에 바탕을 두어 기본형태가 결정되었다. 이 두 도시는 CIAM의 사상, 특히 1933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4회 근대건축국제회의 주제인 '기능적인 도시'를 충실히 적용한 것으로서 30년에 걸친 CIAM운동의 종합적인 결산이었다.

                                       (그림11) 샹디가르              

                                     (그림12) 브라질리아

 


  신도시의 개발


  신도시(new town)는 영국에서 발단된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대도시를 모도시로하여 근교에 새로 개발된 도시 등을 말할 수 있으며, 건설목적은 각 나라의 국내사정과 시대의 요청에 따라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영국의 신도시 개발 사례는 여러 국가의 도시계획가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어 왔다. 이는 영국의 일부 계획, 예를 들면 아버크롬비 계획(Abercrombie Plan)과 신도시 건설이 대단히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토개발이라는 국가정책 및 이를 근거로 계획된 도시계획 정책의 일환으로 구상된 신도시들 역시 주목할 만한 집중적 도시계획 사업중의 한가지이다.
  영국의 신도시 정책은 대중적 토론과 지지의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발전된 종합적인 계획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에는 전원도시협회(Garden City Association)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899년 하워드에 의해 설립되고 후에 도시농촌계획협회(Town and Country Planning Association)로 개명된 전원도시협회는 지속적으로 대도시에서 교외지역으로의 확산을 반대하였고, 신도시조성에 의한 과밀억제에 찬성하여 법안통과에 노력하였다.
  1940년에 바로우 위원회(Barlow Commission)는 산업인구의 배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런던에서는 더 이상의 산업 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런던 과밀지역의 분산이 국토개발이라는 국가정책의 시급한 요소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였고 이러한 전망 아래 전쟁이 끝날 무렵 아버크롬비의 대런던계획이 수립되었다.
  1944년의 아버크롬비의 대런던 계획은 런던 주위에 환상의 그린벨트를 설치하고 그린벨트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이다. 대런던 계획은 런던을 중심으로 4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8개의 신도시를 건설하여 과밀된 도시권의 인구를 분산시키고자 한 계획으로서 실제로 런던에서 32∼40㎞ 떨어진 곳에 할로우(Harlow), 스티브네이지(Stevenage) 등 8개의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할로우는 1947년에 기버드(F. Gibberd)에 의해 계획되어 런던북쪽 약 48㎞지점에 부지면적 2,450ha로 개발된 초기 신도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현재까지 총 34개의 신도시를 건설함.)

                                     (그림13) 대런던 계획           

                                     (그림14) 할로우 신도시

 

  미국의 신도시개발은 1930년대의 뉴딜정책 수행시기에는 일종의 그린벨트 커뮤니티로서 생산입지를 억제하고 전원도시적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이후에는 대도시인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대도시의 인구집중을 막고 주택공급을 위해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일본의 신도시개발은 대부분 대도시에서의 주택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재부흥과정(戰災復興過程)에서 대도시로의 인구급증 현상으로 인해 동경 등 대도시는 극심한 주택난과 택지난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고 대도시의 질서 있는 발전을 도모하고자 대도시주변에 주택도시의 성격을 가진 도시를 개발한 것이 일본의 신도시개발이다.
  우리나라에서 신도시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라 할 수 있으며 크게 두 가지 정책목표에 의해 추진되었다. 먼저 경제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공업단지조성에 따른 산업기지 배후도시로서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울산, 포항, 구미, 창원과 여천 등의 신도시들이 이러한 이유에 의해 건설되었다.
  수도권의 과밀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서울의 공해공장 이전을 위해 건설된 반월 신도시, 수도권의 주택공급 및 인구분산을 위해 건설된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개 신도시들이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도시재개발


  도시재개발은 현대사회에 적응할 수 없게 된 도시의 환부를 도시의 기능과 환경의 개선이라는 계획적 의도 하에 다시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 있어서의 도시재개발은 1949년과 1954년 주택법(Housing Act)에 그 상세한 내용들을 기술하고 있다.
  1958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도시재개발에 관한 제1회 국제세미나에서는 도시재개발을 지구재개발(redevelopment), 지구수복재개발(re-habilitation), 지구보전재개발(conservation)로 정의하였다.
  도시재개발은 도시의 기능과 환경의 유지 및 향상 도모라는 공통목적을 갖고 있으나 각각의 재개발사업은 도시구조의 개혁이라든지 중심시가지의 직주근접촉진, 공공시설의 정비, 도시의 방호, 방화, 상가재개발, 시가지 환경정비 등의 다양한 목적을 가질 수 있다.
  도시재개발의 사례로는 런던의 바비칸(Barbican)지구 재개발계획이 있다. 바비칸은 런던의 중심가에 있으며 중심상업지구로 발전한 지역이었다.
  바비칸 재개발은 실제로 2개의 바비칸지역 계획사업이었는데 하나는 면적이 63acre되는 지역으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황폐지가 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런던대교의 바로 동쪽 템즈강에 면한면적 28acre의 지역이다.
  이 사업은 고층건물을 가진 고밀도 계획이었다. 주된계획개념은 다층교통체계(multilevel circulation system)로서 지상에서 높이 설계된 보행자도로가 계획건물의 여러 곳과 연결된다. 계획목적은 도심지구의 인구감소를 중지시키고 도심업무시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며, 문화시설을 확충하는 것 등이다.
  이 사업은 모든 현대도시가 느끼고 있던 전후(戰後)의 자동차의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의 많은 계획가들의 시선을 끌었다.
  미국의 사례로는 볼티모어 도심부의 경제적 낙후를 방지하기 위해 계획되어 1969년에 완성된 찰스 센터(Charles Center)가 유명하다. 이는 부지 약 12ha로서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 2개의 재래도로가 있으며, 지구의 일제화를 기하기 위해 보차분리를 하여 남북을 보행자 데크로 연결하고 이를 지구 전체의 축선(軸線)으로 하였다.
  주요기능으로는 북쪽에 고층아파트에 의한 주택군과 쇼핑센터, 그 남쪽 광장을 둘러싼 사업소와 호텔, 상점, 극장 등이 있으며, 서쪽으로 인접해서 시민회관이 있다. 주차장은 모두 지하에 설치되어 있다.

 


3) 현대의 도시개발


  산업혁명이후부터 시작된 도시화는 20세기에 들어 급속히 진전되었다. 특히 20세기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대도시화의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고 이로 인하여 오늘날의 도시들은 다양한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인구와 자본 그리고 여러 가지 도시적 기능들이 급격히 집중 확대되면서 기존의 도시정비나 기구로는 양적, 질적, 시간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와 부담에 대하여 충분한 대응을 할 수 없는 불균형상태가 발생하였다.
  과밀과 집적으로 인하여 도시에서 배출되는 여러유해환경물질이 증가되었는데 현재의 대도시내의 환경오염은 이미 자연의 자정능력을 넘어선 단계에 있다.
  중심기능의 쇠퇴와 기능의 이전으로 인하여 중심지역의 황폐화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의 도시개발은 전술한 대도시가 갖는 다양한 문제점 해결과 함께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 경제 문화현상 등에 대한 대응책이자 해결책으로써 여러 방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새로운 도시계획개념의 대두


  유럽에서의 산업혁명 이후 사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통해 지속적인 도시건설이 이루어져 인구 100만명 규모의 대도시들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최초로 런던이 1810년에 인구 100만명의 도시가 되었고 파리는 1846년에 뉴욕은 1860년대에 100만급 도시가 되었다.
  대도시는 오늘날 세계 도처에 그리고 저개발의 제3세계로부터 개발도상국,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지역에서 등장하고 있다.
  거대도시(megalopolis)는 공간적으로 밀집된 대도시권들 사이의 강력한 경제적 연계를 바탕으로 나타난 새로운 도시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재화, 그리고 원격통신의 왕래가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짐으로써, 거대도시는 공간적으로는 분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은하계처럼 일련의 고립된 인구집중 지역들이기보다는 거대한 하나의 도시로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세계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의 도시집중 역시 이러한 거대도시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의 루르(Ruhr)지역, 네덜란드의 란트스타트(Randstad)지역, 일본의 훗카이도(東海道) 메갈로폴리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환경문제와 도시계획


  현대에 있어 환경친화적인 도시개발이 과거와 구분되는 점은 첫째, 과거 환경문제와 관련된 도시개발은 자연환경과 도시가일원화된 상호공존의 성격을 띄기보다는 도시중심의 개발이었던 점에 비하여 현재는 도시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인식 하에 상호공존을 위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기존의 개발이 도시별, 국가별로 상황에 따른 국부적인 개발로 진행됨에 비하여 현재는 전세계적 공감대 속에 범지구적 환경보전을 위한 포괄적인 실천계획이 수립되고 이에 따른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들어 도시화에 따른 주거, 환경, 빈곤의 문제는 세계적인 과제로 부각되었다.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는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환경 및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인류복지와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
  인간정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에 들어서 ESSD (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개념이 대두되었으며 뒤이어 1992년 유엔인간정주회의(UNCED)에서는 의제 21(Agenda 21)이 채택되었다.
  의제 21은 ESSD에 비해 보다 구체적인 차원의 국가별 행동강령으로 수립되었다.
  1996년에 발표된 HABITAT Ⅱ는 주거문제를 도시문제와 연계하여 환경, 사회개발, 인구, 여성문제 등과 함께 범지구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범지구적 행동지침이다.
  HABITAT Ⅱ는 첫째, 도시화 문제를 국제적, 국내적 개발계획에서 우선 순위에 놓고 둘째, 도시관리와 주택개발에 있어 새로운 정책과 전략을 추진하며 셋째, 도시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환경친화적 개념에 의해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도시개발로는 컴팩트시티(compact city) 개발과 생태도시(eco-city)개발 등이 있다.
  컴팩트시티개발이란 전원도시론과 같이 교외지역 주거지역을 저밀도로 확산시키는 개발방식 대신 시가화된 기존의 도시 또는 신도시로 설정된 지역을 고밀도로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자연자원의 무분별한 훼손을 막고, 직주근접을 통하여 교외지역에서 발생하는 교통량을 최소화함은 물론 인프라 및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컴팩트시티개발은 다수의 교외지역에 확산된 개발보다는 소수의 고밀개발을 통하여 환경에의 부하를 최소화하고 정주지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방만한 교외확산을 방지하고 개발지역을 고밀도로 이용함으로써 미개발지를 보호할 수 있게 되어 자연생태계에 대한 부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컴팩트시티개발은 공원, 정원 등과 같은 녹지공간의 부족을 초래하여 거주민으로부터 자연과의 원활한 친화를 빼앗기 쉽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컴팩트시티개발의 과제는 자연환경보전과 도시개발의 관계 속에서 적정개발밀도를 도출하는 것이다.
  생태도시개발이란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적인 체계로 보고 도시의 다양한 활동이나 구조를 자연의 생태계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 자립성, 순환성에 가깝도록 계획하고 설계하여 인간과 환경이 공존하는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생태도시개발은 첫째, 인간생활에 있어서 기반임과 동시에 자원인 환경을 현명하게 보전 이용함으로써 장기적이고 계속적인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하며 제한된 자원의 사용에 있어 차세대를 고려한 도시개발이다. 둘째, 인간과 환경사이의 총체적인 관계를 인식한 뒤 인간생활의 무대로서의 도시를 환경으로 보다 바람직
   하게 조성하여 적극적인 개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시개발이다. 셋째, 지구적인 환경제약 아래 고도산업화 사회와 환경과의 조화를 모색하고 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도시구조와 기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한 환경보전형 생활양식의 실현을 달성하는 도시개발이다.
  생태도시개발은 그 규모에 있어서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50만∼100만이 하나의 기준으로 제안되고 있다.
  생태도시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대표적 도시로는 독일의 니더작센(Niedersachsen)주와 일본의 고베시, 미국의 데이비스(Davis)시 등이 있다.

 

 

  도시활동의 변화와 도시개발


  현대의 도시개발 방향은 특정 기능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버타운개발, 테크노폴리스개발, 관광휴양지개발, 정보화도시개발 등이 그 예이다.
  개발종류의 세분화는 사회현상 및 도시활동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서 점차 도시가 개성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버타운개발은 인구의 고령화, 고령자의 경제력 향상, 복지서비스 수요의 고급화와 동양의 경우 부양의식과 가족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
  실버타운은 노년층에 있어 노년기의 삶의 질을 높여 주기 위해 신체적 특성에 맞는 건물설계와 서비스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계획된 노인집단주거 중심의 도시를 의미한다.
  실버타운은 입지적 특성에 따라 도시형, 도시근교형, 전원 휴양형으로 나누며, 대표적인 개발사례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레저월드(Leisure World)와 엔젤스 프라자(Angeles Plaza), 일본의 로얄라이프 다마 등이 있다.
  테크노폴리스 개발은 지역의 문화전통과 자연환경에 첨단기술산업의 활력을 도입하여 '産'(첨단기술산업군), '學'(학술연구기관), '住'(쾌적한 생활환경)의 세가지 기능이 잘 조화된 도시조성을 실현하여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정주체계를 달성하고자 한 개발이다.
  개발은 지역의 지식집약화와 높은 부가가치를 얻는 산업정책전략인 동시에 인구 및 산업의 지방 분산을 꾀하고 지방의 자립적 발전기반을 구축하여 국가발전의 성장거점을 확립하려는 지역개발이라 할 수 있다.
  유사한 개발로는 연구학원도시개발, 테크노파크개발, 업무단지개발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개발사례로는 일본의 테크노폴리스군(쓰쿠바)과 미국의 실리콘 밸리, 우리나라 대덕연구단지 등이 있다.
  관광휴양지개발은 장기체재를 전제로 일정 규모의 양호한 자연조건을 가진 지역에 레크레이션, 스포츠, 상업, 문화, 숙박 등을 위한 시설들이 복합적으로 갖춰져 인간의 휴양 및 에너지 재충전을 목적으로 구성된 지역 혹은 시설들에 대한 개발이다.
  관광휴양지개발은 국가마다 국민들이 즐기는 스포츠, 여행, 휴양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관광휴양지개발로는 프랑스 Languedoc-Roussillon지역과 일본의 화원촌 관광산촌, 싱가포로의 Buran Darat지역, 미국의 Lake Pineloch Village 등이 있다.
  텔레포트시설을 갖춘 정보화도시의 개발을 고도정보사회의 도래라는 시대의 요청에 의해 등장한 개발로서 정보통신기지로서의 역할은 물론 도시개발의 중핵으로서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국제적 정보도시건설을 급속히 추진하고 있는데 일본의 인텔리전트시티 구상과 동경수도권의 인텔리전트빌딩 네트워크 구상(IBNET구상) 등이 대표적인 개발사례이다.
  급격하게 지식화, 정보화로 치닫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의 도시발전 방향 역시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인 대처가 긴요하다. 따라서 정보화도시개발은 각국 도시개발정책의 중심 핵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전술한 개발유형 이외에도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도심의 주거기능 활성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고 리우환경회의 결과로 친환경적인 도시개발과 압축도시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활성화된 복합용도개발 그리고 세계화시대의 국가 및 도시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단지개발 등도 최근의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등장한 개발유형이라 할 수 있다.

Posted by 살구ISUE
ARCHI./INFOR.2010. 3. 7. 23:31
런던 도크랜드 도시재생 사례 2월 25일 양도식 박사
http://cafe.naver.com/cityexplorer.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814
박용남의 생태적 도시재생 이야기 -2 꾸리찌바시의 Zero Waste 운동
http://www.makehopecity.com/?p=9865

Posted by 살구ISUE
ARCHI./INFOR.2010. 3. 4. 22:58

(제일엔지니어링 UPZINE에서 펌)

 

▶도심 재생(Urban regeneration)이란 도심 공동화 현상을 방지하고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심 재생은 신도시 개발과 마찬가지로 보통 짧게는 10년에서 20년에 걸친 장기 사업으로 진행된다. 지역 내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다양한 공간구조의 변화, 지역 거주민의 커뮤니티 활성화가 주요한 개발의 목적이 되고 있다.

▶도심 재생 사업에 최근 새로운 경향이 가미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그 동안 도시개발에서 간과해 왔던 사소한 문제들을 보완하고 재고려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도시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 방법이다. 즉 물리적인 건축물을 개보수하는 것보다 지역 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도시 소프트웨어 정비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일명 Urban Renaissance라고 부르고 있다. 영국 도시개발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그들이 살아온 '인간의 역사'를 '보존'하고 '존중'하는 공간구성에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산업적인 측면에서 도심부의 재생 방향 
   - 도심은 거대한 네트워크 생산기반을 갖추고 있다. 인위적, 강제적 도심부 산업구조조정보다는 네트워크성, 벤처성 강화를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 도심 공간 정비가 진행되어야 한다. 소규모와 네트워크 생산체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동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도록 기반시설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 역사문화 보전과 경제적 개발이 반드시 길항(拮抗)관계에 있는 것만은 아니며, 이 양자의 조화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 역사문화재와 결합하여 도심을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함으로써 복합적인 쇼핑이 가능하도록 정비하여야 한다. 도심부에서 산업 활동과 관련된 복합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함께 지향되어야 한다. 
   - 내재적으로 이미 벤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도심부 산업에 대한 벤처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고숙련 기술력을 활용한 제조업형 벤처기업의 입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쾌적한 연구 공간 확보, 연구센터와 기업 간 연계, 전자상거래시스템 구축과 같은 기반시설 확보가 요청된다.
   - 도심부의 주민, 산업체 등이 실질적으로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획 및 집행단계에서 다양한 이해관계,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와 처방이 마련되어야 한다. 
   - 도심부에서의 국제적인 금융업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심부의 역사문화공간, 장기 거주공간을 확보하면서 시너지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개발해야 한다. 
   - 도심부를 단순히 고층빌딩으로 채워야 도심의 재생, 활성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제기능의 네트워크 체제를 이해하고 이에 근간을 둔 혁신체제가 가동되면서 역사문화, 축제가 산업기능과 연결될 때 도심의 재생, 활성화를 기약할 수 있다.

- 출처 : 국토 통권275호 서울시의 도심재생과 경제활동 中 -

※ 도시재생정책의 성공사례로서 「영국 캐슬베일(Castle Vale)」의 사례(국토, 통권271호, p56~63)를 첨부함

도심재생의 중요성[서수정 주택공사 주택도시 책임연구원]
 오는 7월부터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됨에 따라 그동안 답보상태에 머물렀던 강북뉴타운사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또 서울시에 국한됐던 광역단위재개발이 지방대도시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도시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는 신자유주의 도시관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기성시가지 정비는 도시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인근 일본을 비롯해 영국, 독일, 미국 등에서는 낙후된 기성시가지의 활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설해 쇠퇴한 구도심에 관광객을 유치, 지역경제를 살린 스페인의 빌바오, 대규모 물류항과 포도주 창고를 개조해 쇼핑몰과 박물관, 문화공간이 어우러진 대규모 복합주거단지로 변모시킨 프랑스 파리의 벡씨 프로젝트, 대도시로의 인구유출과 기존 도시의 노후화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한 재래시장을 도서관과 문화센터, 교육기관이 공존하는 복합시설로 정비해 과거 재래시장의 명성을 되찾은 일본의 아오모리시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도시의 특성은 단순히 물리적 환경을 개선한다는 일차원적인 정비사업에서 벗어나 문화적, 경제적 측면에서 기성시가지의 활력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도시정비(urban renewal)보다 한 차원 발전된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민간 자본과 노하우를 도시재생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경제재생으로 연결시키는 일본의 도시재생정책과 기능이 공적역할을 강화, 쇠퇴한 기성시가지의 도시기능을 재편하고 도시경제를 재생하는 영국의 도시재생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도시재생정책은 지난 2001년 5월 고이즈미 내각에 의해 도입된 소위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이 도시재생정책은 민간의 도시개발활동을 자극하기 위해 '도시재생특별촉진지구'를 지정하고, 이 지구에 이루어지는 개발에 한해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금융.행정지원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록본기힐즈는 일본의 부동산개발회사인 모리빌딩이 개발주체로 참여하여 17년이란 긴 세월을 400여명의 권리자들간의 합의조정 과정을 거쳐 주거와 업무, 문화, 상업기능이 복합된 문화도심으로 재생됐다.
록본기는 현재, 아사히 TV와 복합 콤플렉스 영화관, 모리미술관, 그랜드 하얏트 호텔, 840세대의 고급 주상복합이 입지해 있어 주말이면 약 15만명의 방문객이 찾아들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반면 일본보다 앞서 도시재생정책을 추진한 영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공공섹터가 중심이 되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도시재생사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사업별 특성에 따라 다양한 도시재생기구(Urban Regeneration Companies)를 창설, 운영해 오고 있다. 
특히 영국의 도시재생정책은 산업화이후 조성된 공업도시의 쇠퇴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물리적 환경재생 뿐 아니라 거주인구 유입을 위한 신산업유치에 목표를 두고 있다.
철강도시였던 쉐필드시는 대형 쇼핑몰인 메도우홀(Meadow Hall)을 유치해 고용창출효과뿐 아니라 공업도시 이미지를 벗고 쇼핑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고, 런던의 항구도시 도크랜드는 대규모 물류창고기지를 세계적인 금융도시로 탈바꿈함으로써 런던이 유럽의 거점도시로 재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해외 도시재생사례는 쇠퇴한 환경개선뿐 아니라 고용기회증대와 시대변화에 따라 기능을 상실한 도시공간의 재편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한다는 문화적 배경을 둔 공적측면이 강조된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강북뉴타운사업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Posted by 살구ISUE
ARCHI./INFOR.2010. 3. 4. 22:58
Posted by 살구ISUE
ARCHI./INFOR.2010. 3. 4. 22:56

[특집]엘베강 홍수나도 통행 가능한 인도 4m 높이에 설치


독일 함부르크 엘베강 전경. 독일 함부르크 오윤석기자

 강원일보사는 1980년대부터 작성된 도시생태현황지도를 기초로 친환경적인 도시계획에 활용해 생태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는 독일의 베를린시와 함부르크시 사례를 통해 향후 지향해야 할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후변화대응, 도시생태를 살려라(3)도시재생으로 녹지축 보전하는 독일 함부르크시


 

 

 ■녹색도시 함부르크의 보물 엘베강과 알스터 호수


 아우토반 양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평야에서는 중세시대 기사들이 금방이라도 긴창을 들고 말을 달리며 숲속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다.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향하는 아우토반 1번 고속도로 양옆에는 울창한 숲들이 자연스럽게 차단벽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차단벽이 시멘트이거나 온통 인위적인 것에 익숙해서인지 아우토반을 달리는 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베를린에서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세계적인 항구도시 함부르크는 겨울이 시작된 계절답지 않게 도시 주위는 온통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대형 선박들이 정박돼 있는 엘베강 주변으로 수 킬로미터를 따라 이뤄진 숲속의 집들과 수 백년은 넘었음직한 아름드리 수목들속으로 산책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숲 속에 포근하게 들어선 집들의 나뭇잎은 모두 떨어졌지만 온통 숲으로 둘러쌓여 굳이 담을 만들 필요도 없어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엘베강변의 숲길은 말 그대로 도시 중심부의 알스터호수와 함께 함부르크 보물로서 손색이 없었다.

 웬만한 축구장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숲에서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함부르크에 도착한 다음 날, 함부르크시청의 슈퇴르머(Petra Stoermer) 환경생태계획과장이 소개한 곳은 함부르크시가 야심찬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하픈시티(Hafen City).

 2000년에 시작돼 25년동안 장기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의 현장이었다.

 엘베강의 홍수위협에 함부르크 시민들이 새로운 도시개발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나온 방안이 하픈시티내 기존항구의 창고를 재생하는 사업이었다. 현재 1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어서인지 곳곳에는 아직도 공사열기가 한창이다. 

 157㏊의 수변공간에는 국제해양박물관과 하픈시티대학교, 초등학교, 과학센터, 크루즈센터,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플라자, 마르코폴로 광장, 전통선박항구 등이 들어섰거나 한창 건설중에 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재생되고 있는 셈이다. 항만의 낡고 퇴락한 시설공간에 최첨단 건축물을 세워나가며 기후변화에 따른 홍수에 자연친화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녹색정치의 본산다웠다. 녹색공간은 물론 모든 건축물의 옥상녹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녹색과 메트로폴리탄건설’을 동시에 견지해나가겠다는 전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엘베강 입구에 위치한 하픈시티의 건축물은 세계 건축사들을 대상으로 설계경연을 거쳐 기후변화로 인한 대규모 홍수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새롭게 다가왔다.

 강과 지상의 높이를 높였고 다시 지상에서 건물의 한층정도(약 4m)를 높여 물에 잠겨도 건축물에는 지장이 없도록 설계를 한 후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홍수로 인해서 도시가 물에 잠겨도 시민들의 통행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공중(?)에 설치된 인도에는 평소에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했다.

 데드로프(32·여·Vladana Dethloff)씨는 “엘베강의 홍수위협을 해결하고 새로운 도시개발을 위해 진행된 하픈시티의 건축물 건축을 위해 2000년 세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했다”며 “하픈시티 프로젝트는 유럽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로 기존 녹지를 건드리지 않고 40%의 면적을 넓히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도시재생사업”이라고 말했다.

 200년 전 강으로 이용했던 함부르크의 또다른 보물 알스터(Alster)호수는 밤낮으로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녹지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휴식공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함부르크 시내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호수 인근에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자연과 함께여서인지 시민들에게서는 여유와 낭만이 엿보였다.

 수변공간의 자전거도로는 기본이었고 지하철까지 자전거를 들고 타는 도시이다 보니 자동차는 선택일 뿐이었고 녹색도시의 전형성이 함부르크 항구, 공원, 거리 등에 그대로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함부르크시의 생태역할과 고용창출의 힘, 엘베강


 함부르크는 최근 유럽의 녹색수도로 선정돼 그린캐피탈 상을 수상했다. 엘베강의 홍수문제 대응방안과 아우토반 7번의 천장을 덮어 매연을 최소화하고 그 위를 녹색지대로 만드는 것이 상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친화적이면서 새로운 고용창출의 효과까지 거둘 것으로 기대되는 하픈시티가 완성되면 이곳에는 1만~1만2,000여명이 거주하게 되고 고용창출도 4만개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같은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이 가능한 것은 민간투자자의 자본을 이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시키는 작업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1973년 시작된 이 같은 제도를 독일에 적용하는데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다.

 함부르크 시청의 베너(Werner Steinke)씨 안내로 찾은 호이베르그(Heuberg)에는 한창 공원조성이 진행중이었다. 일종의 공공사업이었지만 역시 인근 건물주 등 민간투자자의 자본을 이용한 사업이었다.

 호이베르그에서는 독일의 고유종인 ‘고향의 나무’와 외부에서 수입했지만 주변 건물보다 오래있을 수 있는 나무 즉,‘생명의 나무’로 일컬어지는 나무를 식재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베너씨는 “함부르크는 예전과 달리 무조건 녹색지대만을 고수하지 않는다”며 “주변과의 조화를 통해 환경도 보호하고 경관도 좋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함부르크시의 홍보담당 에노 이저만(Enno Isermann)씨는 “함부르크의 가장 큰 약점은 역시 엘베강의 홍수인데 1962년 대규모 홍수로 빌헬름스부루크섬의 시내가 물에 잠기는 재난이 있었고 이후 댐을 높이고 생태지역을 넓히고 있다”며 “함부르크시는 도시를 생태박물관으로 만드는 것보다 기업과 함께 숨쉬면서 고용도 창출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함부르크시 환경생태계획


 함부르크시는 지난 30년간 환경생태계획이 자연보전법상 가장 중요한 계획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함부르크시의 광역도시계획은 1920년 슈마커(Schumacher)의 도시계획인 깃털계획(Feather Plan)에 중점을 두고 있다. 외부에서 흘러오는 자연축을 통한 도시발전이 핵심이다. 이로 인해 도시는 자연을 침해하지 않고 도시 내에서 개발을 할 수 있다.

 함부르크시의 도시계획은 외부 축을 따라서 발전하는 계획 그대로 승계되고 있어 구도심지 재생, 재개발계획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 그대로의 녹지를 보전할 수 있다.

 함부르크시에서는 2013년 `국제도시사회 그리고 도시기후변화‘를 주제로 국제건축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에 대비해 도시 근교를 매력적으로 조성하고 대도시에서의 국제도시 의미, 도시와 기후변화에 대한 각 지자체의 건축물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함부르크시는 환경생태계획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계획으로 비오톱지도화를 꼽고 있으며 1979년부터 5,000대 1로 정주지와 비정주지를 구분해 조사하고 8년마다 갱신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원상호기자theodoro@kwnews.co.kr


Posted by 살구ISUE
ARCHI./INFOR.2010. 3. 4. 22:53
'아트팩토리' 추진 지역은… 강화 방직공장·배다리 양조장 적격
광복 이후 직물산업 황금기 등 간직… 체계적 전수조사 이뤄져야

[경인일보=김명래기자]공장, 발전소, 창고 등 오래된 산업시설을 보전하고 활용하는 '아트 팩토리(Art Factory·예술을 위한 공장)'는 국내 여러 도시에 확산돼 있다.

전북 군산시는 작년 1월부터 '군산 내항 일원 산업유산의 문화공간 벨트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내항을 중심으로 반경 1㎞안에 위치한 건축물과 거리 등을 산업문화공간으로 재생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젝트다. 내항에 있는 낡은 건축물을 예술창작단지로 만드는 계획도 갖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도 작년부터 '폐채석장을 활용한 예술창작벨트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포천 채석장은 1960~2000년까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2년 허가기간이 끝나면서 흉물로 변했다. 포천시는 2003년부터 155억원을 투자해 2009년 포천아트밸리를 조성했다. 2단계 사업으로 포천시는 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해 창작스튜디오와 문화예술카페를 조성하기로 했다.

전남 신안군은 지난 2007년 증도 석도소금창고를 리모델링해 소금박물관을 개장하기도 했다. 

인천지역에도 이처럼 재활용 가치가 높은 산업유산이 많다. 인천발전연구원은 '강화지역 방직공장'과 '배다리 양조장'을 꼽는다.

해방을 전후한 시기 강화에서는 직물산업이 성행했다. 공장형 직물산업이 발달해 1950년대 송해면·선원면, 1960년대 들어서는 강화읍 신문리·관청리, 하점면까지 공장이 확산됐다.

합성섬유 위주의 생산체계가 구축된 대구에 직물산업 주도권이 넘어간 1970년대 이전까지 강화에서는 직물공업이 번성했다. 현재 강화읍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 중 상당수가 직물공장과 관련 있는 것이다. 강화읍 신문리에는 일제시대 강화에서 가장 큰 포목점으로 사용됐다고 하는 2층 건축물이 남아 있다.

동구 창영동 배다리는 과거 인천양조장을 비롯해 성냥공장, 재래시장, 헌책방거리 등이 있던 장소다. 양조업은 중단됐지만, 이곳에 지역 미술가들이 입주하면서, 양조장 건물의 가치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근대산업유산의 재활용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전수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상징적 산업유산은 리모델링해 전시공간, 소규모 문화공연장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또 포천의 사례처럼 예술가들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신성희 책임연구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까지 320억원 규모로 전국에 시·도 문화창작공간 조성사업을 지원하고 있다"며 "근대산업유산이 많은 인천시가 관심을 갖고 좋은 사업안을 마련한다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Posted by 살구ISUE
ARCHI./INFOR.2010. 3. 4. 22:51

전남 신안군 증도에 펼쳐진 태평염전. 이 일대가 2012년까지 소금염전 박물관, 염전 체험공간, 
소금공예공방 등을 갖춘 이색적인 소금염전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한다. 사진 제공 신안군

■ 문화부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 조성’ 기본안 확정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흔적, 소금과 염전의 재발견, 철길에 깃든 근대의 추억, 한국의 오르세를 꿈꾸는 연초제조창, 채석장의 화려한 변신….

전국 곳곳의 근대산업유산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창작벨트 조성 프로젝트’ 기본안이 최근 확정됐다. 대상은 전북 군산시의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물, 충남 아산시의 도고온천역 폐철로 일대, 전남 신안군의 증도 태평염전, 대구의 옛 연초제조창, 경기 포천시의 폐채석장.

2009년 문화부가 역점 사업으로 선정한 뒤 1년 동안의 준비 조사 및 연구용역을 거쳐 최근 기본안을 확정한 것이다. 올해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2012년 마무리된다. 총예산은 국비와 지방비 포함해 약 420억 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문화부의 한민호 디자인공간문화과장은 “근대 산업유산의 활용은 새로운 문화관광산업의 핵심이다. 근대기의 역사문화 흔적이 현재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부는 올해 안에 5곳을 추가로 선정할 예정이다.

○ 일제강점기 ‘탁류’의 흔적



 
1930년대 일제 수탈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던 채만식 소설 ‘탁류’의 무대, 군산. 1899년 군산의 개항 이후 일제는 이곳을 호남지역 곡물 수탈의 근거지로 삼았다. 이런 연유로 군산 시내엔 당시의 흔적이 즐비하다. 그러나 상당 부분 방치되어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다. 군산 프로젝트는 이 건축물을 보존 정비해 역사문화공간으로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문화부와 군산시는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옛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 대한통운 창고, 옛 미즈상사 등 군산시 장미동 일대 4곳의 건물을 근대 역사벨트로 조성하기로 했다.

1923년 건축된 옛 조선은행 건물은 군산의 근대 산업기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군산에서의 산업유산(쌀산업 술도가 고무 철도 등)과 관련 기술을 전시하고 체험함으로써 근대 군산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나가사키 18은행은 군산 시민들의 작품을 전시·소개하는 소규모의 갤러리와 군산의 역사문화 홍보관으로, 대한통운 창고건물은 복합적 창작 및 공연 공간으로, 미즈상사 건물은 문학예술 고서적 전시 및 체험 공간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군산시 근대역사문화추진팀의 곽동근 씨는 “근대화과정에서 군산지역의 영욕을 보여주고 이를 문화로 승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산시는 문화재청과 함께 일제강점기 포목상이었던 히로쓰의 가옥을 보존 정비하기로 했다. 또한 군산 도심 일대의 일본식 가옥, 옛 군산세관 청사, 옛 남선전기 군산지점 건물 등 다양한 근대건축물을 보존 활용해 군산을 근대 역사도시로 조성해 나갈 방침이다.

2012년까지 420억 투입
새 문화관광산업 핵심으로
올해 안에 5곳 추가 선정


○ 소금과 염전의 재발견

목포에서 49km 떨어진 전남 신안군 증도면. 이곳의 태평염전 일대가 이색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하게 된다. 현재 증도 태평염전은 염전체험, 갯벌체험 등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소금, 염전과 관련된 문화예술공간이 새롭게 조성되는 것이다. 태평염전 프로젝트는 소금과 염전에 대한 재인식에서 출발한다. 소금과 염전은 근대 산업과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소금과 염전을 테마로 한 에코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소금창고 리모델링. 1970년대에 세워진 태평염전의 목조 소금창고를 소금 및 염전 체험공간으로 꾸미는 것이다. 이 창고는 근대기 한국 소금산업의 흔적을 잘 간직한 희귀 건축물이다.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 시의 근대건축물 유리공방처럼 소금창고 안에 소금공예 공방을 만들고 관람객들이 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꾸밀 계획이다. 또한 인근의 소금박물관과 연계해 소금 문화벨트를 형성하게 된다. 현재의 소금박물관은 1953년 들어선 석조 소금창고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 밖에 염전 체험장, 염생식물 관찰원, 염전 전망대, 야외 전시장 등을 함께 조성해 소금문화 체험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소금의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직접 체험하고 소금을 이용한 조각 공예에 참여하며 염전 및 갯벌체험을 연계한 축제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 아름다운 철길, 추억의 근대공간

아산시 도고면과 선장면의 도고온천역과 폐철로 주변은 군산 신안과 또 다른 문화공간으로 바뀐다. 아산 프로젝트의 기본 방향은 장항선의 폐철도와 역사, 농협창고, 폐교를 활용해 근대의 추억이 가득한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2007년부터 기능을 상실한 도고온천역을 창작 레지던스 공간으로 만들고 1970년대에 건축된 농협 창고를 공연예술 극장과 카페로 조성한다. 폐교는 공연 창작 스튜디오로 활용하기로 확정했다. 

탁 트인 들판과 논길, 저녁노을이 매력적인 철길도 최대한 살리기로 했다. 아산시 관광체육과의 국승섭 씨는 “도고온천역 주변의 폐철로 길은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유명하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저녁노을과 수채화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산시는 도고온천역 주변 도로 풍경도 그대로 살려 정비하기로 했다. 은하사진관, 고향식당, 도고 닭집, 진미식당, 청수상회, 고바우 만화방 등 기존의 간판과 건물을 그대로 보존 정비해 이곳을 대표적인 근대 풍경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근대적 문화향수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대구 연초제조창의 경우, 대구지역 문화예술창작 발전소로 한창 변신 중이다. 이미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시회가 열렸고 지금은 레지던스 창작 공간 조성과 관련 프로그램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2012년 사업이 마무리되면 한국의 오르세미술관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포천의 폐채석장은 이미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이 끝난 상태. 2002년부터 방치돼오다 지난해 말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30년에 걸친 채석 작업으로 노출된 바위가 오히려 멋진 풍광을 연출하며 이색적인 공연무대의 배경 역할을 하고 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성공한 선진국 사례들

테이트 모던 갤러리 오염된 발전소가 문화거점 변신
파리 오르세 미술관 역에서 700만명 관람명소로




맥주공장에서 산업문화공간으로 변신해 각광을 받고 있는 일본 삿포로 시의 삿포로 팩토리 내부.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산업유산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익숙하다. 가장 낯익은 것이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와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원래 발전소였다.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방치되다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의 전환을 표방하면서 1999년 갤러리로 변신했다. 지금은 템스 강변의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아 연평균 400만 명이 방문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이었다. 전동기차의 발전으로 역이 쉬게 되자 1986년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파리의 문화명소로 연평균 7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관람하고 있다.

일본 삿포로의 삿포로 팩토리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1876년 삿포로 맥주공장이 들어섰으나 도심 구조가 바뀌면서 불합리한 입지공간으로 전락했다. 삿포로 시는 지역 최대산업인 맥주공장을 활용하여 1993년 상업문화시설로 변모시켰다. 흉물이 되어 가던 맥주공장 굴뚝과 건물을 그대로 살리고 현대식 건물과 연결해 문화관광명소가 됐다.

삿포로에서 한 시간 거리인 오타루는 운하 주변에 늘어선 근대 건물을 유리공방 등 다양한 문화상업공간으로 만들어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옛 건물과 유리 공예품의 이색적인 조화가 특히 매력적이다.

독일의 경우 제철소나 광산의 변신이 두드러진다. 뒤스부르크 티센제철소는 유럽 철강시장의 공급 과잉으로 1985년 가동이 중단되면서 지역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역사적 정체성과 장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논의 끝에 기존 시설을 공연장, 유스호스텔, 수중 다이빙 레저시설, 암벽 등반시설로 재활용했다. 지역을 재생시킨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세기 중반∼20세기 후반 세계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광산으로 꼽혔던 에센 광산도 좋은 사례. 20세기 후반 운영이 어려워지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정부가 건물을 사들였다. 매각과 보존 활용을 놓고 수년 동안 논의를 거듭한 끝에 문화 시설로 탈바꿈시키기로 결정했다. 보일러가 들어차 있던 붉은 철골 구조의 건물은 디자인박물관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디자인학교까지 들어서 독일의 대표적인 문화지대로 자리 잡았다.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활용한 덕분에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Posted by 살구ISUE
ARCHI./INFOR.2010. 3. 4. 22:48
강가 버려진 창고, 강물 흐르는 첨단빌딩 탈바꿈
日후쿠오카 `캐널시티`ㆍ기타큐슈 `리버워크`
서울시 추진` 한강르네상스` 벤치마크로 꼽혀

◆일본 도심재개발에서 배운다 (3)◆ 

주변에 흐르는 강물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여 자연과 조화를 극대화한 후쿠오카 캐널시티 모습.
도쿄에서 약 30㎞ 떨어진 요코하마는 도시 재생에 성공해 주변에서 중심지로 환골탈태한 곳이다. 특히 `미나토미라이21` 지역은 오래된 항구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도심을 되살린 모범을 보여줬다. 후쿠오카 캐널시티와 기타큐슈 리버워크도 강 옆에 방치된 터를 활용해 도시 기능을 되살린 사례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가 이런 일본 프로젝트를 참고해 한강르네상스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개념 수립 단계에 머물러 있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철도역과 같이 한강 주변도 아파트와 주상복합 등 주거중심으로 재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반포 압구정 잠실 등 아파트 단지가 많은 곳은 더욱 그렇다.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은 도쿄 도심에서 차량으로 약 1시간 달리거나 전철로 30~40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전철역에서 내리면 지하 통로와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대형 쇼핑몰과 호텔, 오피스가 입주해 있는 고층 빌딩으로 바로 이어진다. 주말이 아닌 오후인데도 세련된 스타일로 차려 입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미나토미라이21`은 요코하마 도심에 있던 조선소ㆍ창고 용지와 매립지를 주변 지역과 연계해 재생시킨 곳이다. 

용적률을 완화해 건물을 높게 짓게 해 주는 대신 건축물 디자인과 녹지 조성 등 공공개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도록 했다. 

개발이 추진된 것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미나토미라이21`이라는 이름도 1980년대 생겼지만 재생사업이 급물살을 탄 것은 2000년대 이후다. 아직도 `수변 활용`이라는 동일한 개념에 근거해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강과 물을 활용한 일본 도시 재생사업에서 빠지지 않는 사례가 후쿠오카 캐널시티와 기타큐슈 리버워크다. 도쿄 롯폰기힐스와 마찬가지로 캐널시티도 오랜 노력 끝에 결실을 본 사업이다. 개발회사와 지주, 지방자치단체가 셀 수 없이 많은 회의를 통해 개발과 관련한 합의점을 도출했다. 

그 결과 후쿠오카를 관통하는 강 바로 옆에 있던 버려진 방직공장 창고를 빌딩 안으로 강물이 흐르는 첨단 건축물로 탈바꿈시켰다. 지금은 연평균 130만명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캐널시티 개발을 총괄한 도 겐니치 후쿠오카 지쇼 이사는 "물과 바람, 공기 등 자연을 결합한 독특한 설계와 더불어 쇼핑도 하고 영화와 뮤지컬도 볼 수 있는 복합 기능을 적용한 것이 사람들을 유인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지금도 인구 성향 등을 분석해 입주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마케팅 마스터플랜을 짜고 있다"며 "이런 사후 관리도 캐널시티를 유명하게 만든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백화점 창고로 방치됐다가 되살아난 리버워크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완결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변에 있던 성(城)과 공원을 고려해 개방감을 높였고 옆에 흐르는 강과 건물이 하나 되도록 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 설계를 담당했던 히라쓰카 노리아키 씨는 "개별적인 것으로 보였던 경관을 전체로 재인식할 수 있는 개념을 도입했다"며 "이는 수변공간이라는 조건을 충분히 활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리버워크는 개발업체인 후쿠오카 지쇼가 지주들에게 위임을 받아 전체 사업을 대행했다. 또 부동산을 증권화해 자금을 조달했으며 언론사와 문화예술, 쇼핑, 대학을 한곳에 모았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리버워크는 지방 도시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수만 명이 다녀간다. 

■ 한국형 첫 수변 재개발, 용산 한강로 순항할까? 

서울시도 수변공간을 활용한 도시 재생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개념만 있거나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여의도와 뚝섬은 개발 방안만 나와 있다. 그나마 도심 개발 측면에서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용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한강로 주변이다. 

한강로 개발은 한강에서 용산을 거쳐 서울역과 남산, 광화문을 연결하는 새로운 도심축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강로는 서울 중앙에 위치하고 앞으로 개발이 끝나면 강남 테헤란로와 더불어 서울을 대표하는 신흥 비즈니스 메카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업계에서는 용산국제업무단지를 비롯해 굵직한 도시 개발사업과 한강르네상스 등 친환경 도시 재생사업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2017년 한강로 가치는 급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무지구에는 높이 645m짜리 랜드마크빌딩이 들어서고 20~70층 규모 빌딩 30개 이상이 신라시대 금관 모양으로 건립된다. 주변에 있는 한강은 호주 시드니나 미국 뉴욕에 버금가는 미항으로 만들 것이라고 사업자 측은 설명한다. 또 지하로는 국제업무지구와 용산역, 용산공원, 한강까지 이어지는 용산링크가 조성된다. 

한강로 개발로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곳이 동자동이다. 한강에서 시작해 용산으로 올라가는 개발 축과 광화문에서 시작해 용산으로 내려오는 개발 축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는 업체는 동부건설이다. 동자4구역과 2구역, 8구역을 재개발할 계획이다. 동부건설은 이런 입지를 고려해 일본 도심 재생 개념을 적용하기로 했다. 

2013년 완공을 목표로 개발이 진행되고 동자4구역은 `동부 센트레빌 아스테리움`을 통해 주거, 문화, 비즈니스, 자연이 공존하는 복합문화단지를 선보일 방침이다. 

최고 지상 35층짜리 총 4개동으로 건립된다. 단지 안에 공원과 은행, 병원, 영화관, 골프존 등 상업과 문화시설을 유치할 방침이다. 11월 분양이 예정돼 있다. 

[후쿠오카 = 장박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Posted by 살구I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