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INFOR.2010. 3. 4. 22:51

전남 신안군 증도에 펼쳐진 태평염전. 이 일대가 2012년까지 소금염전 박물관, 염전 체험공간, 
소금공예공방 등을 갖춘 이색적인 소금염전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한다. 사진 제공 신안군

■ 문화부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 조성’ 기본안 확정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흔적, 소금과 염전의 재발견, 철길에 깃든 근대의 추억, 한국의 오르세를 꿈꾸는 연초제조창, 채석장의 화려한 변신….

전국 곳곳의 근대산업유산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창작벨트 조성 프로젝트’ 기본안이 최근 확정됐다. 대상은 전북 군산시의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물, 충남 아산시의 도고온천역 폐철로 일대, 전남 신안군의 증도 태평염전, 대구의 옛 연초제조창, 경기 포천시의 폐채석장.

2009년 문화부가 역점 사업으로 선정한 뒤 1년 동안의 준비 조사 및 연구용역을 거쳐 최근 기본안을 확정한 것이다. 올해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2012년 마무리된다. 총예산은 국비와 지방비 포함해 약 420억 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문화부의 한민호 디자인공간문화과장은 “근대 산업유산의 활용은 새로운 문화관광산업의 핵심이다. 근대기의 역사문화 흔적이 현재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부는 올해 안에 5곳을 추가로 선정할 예정이다.

○ 일제강점기 ‘탁류’의 흔적



 
1930년대 일제 수탈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던 채만식 소설 ‘탁류’의 무대, 군산. 1899년 군산의 개항 이후 일제는 이곳을 호남지역 곡물 수탈의 근거지로 삼았다. 이런 연유로 군산 시내엔 당시의 흔적이 즐비하다. 그러나 상당 부분 방치되어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다. 군산 프로젝트는 이 건축물을 보존 정비해 역사문화공간으로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문화부와 군산시는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옛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 대한통운 창고, 옛 미즈상사 등 군산시 장미동 일대 4곳의 건물을 근대 역사벨트로 조성하기로 했다.

1923년 건축된 옛 조선은행 건물은 군산의 근대 산업기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군산에서의 산업유산(쌀산업 술도가 고무 철도 등)과 관련 기술을 전시하고 체험함으로써 근대 군산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나가사키 18은행은 군산 시민들의 작품을 전시·소개하는 소규모의 갤러리와 군산의 역사문화 홍보관으로, 대한통운 창고건물은 복합적 창작 및 공연 공간으로, 미즈상사 건물은 문학예술 고서적 전시 및 체험 공간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군산시 근대역사문화추진팀의 곽동근 씨는 “근대화과정에서 군산지역의 영욕을 보여주고 이를 문화로 승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산시는 문화재청과 함께 일제강점기 포목상이었던 히로쓰의 가옥을 보존 정비하기로 했다. 또한 군산 도심 일대의 일본식 가옥, 옛 군산세관 청사, 옛 남선전기 군산지점 건물 등 다양한 근대건축물을 보존 활용해 군산을 근대 역사도시로 조성해 나갈 방침이다.

2012년까지 420억 투입
새 문화관광산업 핵심으로
올해 안에 5곳 추가 선정


○ 소금과 염전의 재발견

목포에서 49km 떨어진 전남 신안군 증도면. 이곳의 태평염전 일대가 이색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하게 된다. 현재 증도 태평염전은 염전체험, 갯벌체험 등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소금, 염전과 관련된 문화예술공간이 새롭게 조성되는 것이다. 태평염전 프로젝트는 소금과 염전에 대한 재인식에서 출발한다. 소금과 염전은 근대 산업과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소금과 염전을 테마로 한 에코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소금창고 리모델링. 1970년대에 세워진 태평염전의 목조 소금창고를 소금 및 염전 체험공간으로 꾸미는 것이다. 이 창고는 근대기 한국 소금산업의 흔적을 잘 간직한 희귀 건축물이다.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 시의 근대건축물 유리공방처럼 소금창고 안에 소금공예 공방을 만들고 관람객들이 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꾸밀 계획이다. 또한 인근의 소금박물관과 연계해 소금 문화벨트를 형성하게 된다. 현재의 소금박물관은 1953년 들어선 석조 소금창고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 밖에 염전 체험장, 염생식물 관찰원, 염전 전망대, 야외 전시장 등을 함께 조성해 소금문화 체험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소금의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직접 체험하고 소금을 이용한 조각 공예에 참여하며 염전 및 갯벌체험을 연계한 축제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 아름다운 철길, 추억의 근대공간

아산시 도고면과 선장면의 도고온천역과 폐철로 주변은 군산 신안과 또 다른 문화공간으로 바뀐다. 아산 프로젝트의 기본 방향은 장항선의 폐철도와 역사, 농협창고, 폐교를 활용해 근대의 추억이 가득한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2007년부터 기능을 상실한 도고온천역을 창작 레지던스 공간으로 만들고 1970년대에 건축된 농협 창고를 공연예술 극장과 카페로 조성한다. 폐교는 공연 창작 스튜디오로 활용하기로 확정했다. 

탁 트인 들판과 논길, 저녁노을이 매력적인 철길도 최대한 살리기로 했다. 아산시 관광체육과의 국승섭 씨는 “도고온천역 주변의 폐철로 길은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유명하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저녁노을과 수채화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산시는 도고온천역 주변 도로 풍경도 그대로 살려 정비하기로 했다. 은하사진관, 고향식당, 도고 닭집, 진미식당, 청수상회, 고바우 만화방 등 기존의 간판과 건물을 그대로 보존 정비해 이곳을 대표적인 근대 풍경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근대적 문화향수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대구 연초제조창의 경우, 대구지역 문화예술창작 발전소로 한창 변신 중이다. 이미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시회가 열렸고 지금은 레지던스 창작 공간 조성과 관련 프로그램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2012년 사업이 마무리되면 한국의 오르세미술관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포천의 폐채석장은 이미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이 끝난 상태. 2002년부터 방치돼오다 지난해 말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30년에 걸친 채석 작업으로 노출된 바위가 오히려 멋진 풍광을 연출하며 이색적인 공연무대의 배경 역할을 하고 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성공한 선진국 사례들

테이트 모던 갤러리 오염된 발전소가 문화거점 변신
파리 오르세 미술관 역에서 700만명 관람명소로




맥주공장에서 산업문화공간으로 변신해 각광을 받고 있는 일본 삿포로 시의 삿포로 팩토리 내부.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산업유산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익숙하다. 가장 낯익은 것이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와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원래 발전소였다.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방치되다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의 전환을 표방하면서 1999년 갤러리로 변신했다. 지금은 템스 강변의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아 연평균 400만 명이 방문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이었다. 전동기차의 발전으로 역이 쉬게 되자 1986년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파리의 문화명소로 연평균 7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관람하고 있다.

일본 삿포로의 삿포로 팩토리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1876년 삿포로 맥주공장이 들어섰으나 도심 구조가 바뀌면서 불합리한 입지공간으로 전락했다. 삿포로 시는 지역 최대산업인 맥주공장을 활용하여 1993년 상업문화시설로 변모시켰다. 흉물이 되어 가던 맥주공장 굴뚝과 건물을 그대로 살리고 현대식 건물과 연결해 문화관광명소가 됐다.

삿포로에서 한 시간 거리인 오타루는 운하 주변에 늘어선 근대 건물을 유리공방 등 다양한 문화상업공간으로 만들어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옛 건물과 유리 공예품의 이색적인 조화가 특히 매력적이다.

독일의 경우 제철소나 광산의 변신이 두드러진다. 뒤스부르크 티센제철소는 유럽 철강시장의 공급 과잉으로 1985년 가동이 중단되면서 지역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역사적 정체성과 장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논의 끝에 기존 시설을 공연장, 유스호스텔, 수중 다이빙 레저시설, 암벽 등반시설로 재활용했다. 지역을 재생시킨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세기 중반∼20세기 후반 세계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광산으로 꼽혔던 에센 광산도 좋은 사례. 20세기 후반 운영이 어려워지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정부가 건물을 사들였다. 매각과 보존 활용을 놓고 수년 동안 논의를 거듭한 끝에 문화 시설로 탈바꿈시키기로 결정했다. 보일러가 들어차 있던 붉은 철골 구조의 건물은 디자인박물관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디자인학교까지 들어서 독일의 대표적인 문화지대로 자리 잡았다.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활용한 덕분에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Posted by 살구I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