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마스터플랜.
도시 재생을 기본으로 한 영도 중 창고부지 마스터플랜 짜기.
처음부터 막막했다. 커봤자 넓은 부지의 건축에 대해 생각하던 내가 마스터플랜을 짜야하다니.
건축적 사고와 도시적 사고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난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내 자신이 얼마나 팀 작업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지.
나는 승부욕은 없지만, 나 스스로가 잘 하고자 하는 욕심은 많다. 난 자기성찰적 사람이다.
가끔은 심히 자학적이기까지 하다.
2인 1조의 설계팀 3팀이 모여 하나의 마스터플랜을 위한 팀원은 6명. 조장은 없다. 다들 같은 크기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팀원 2명이서 하는 것과 팀원 6명이서 하는 것의 차이는 크게 없었을 것 같다.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고, 작업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작업하는 시간도 다르고, 표현도 달랐다.
나는 최대한 타이트하게 작업하고 나만의 여유 시간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팀 작업은 정말 스트레스 팍팍~)
나는 생각을 오래 한다. 노트에 아이디어부터 어떻게 작업을 할 것인지 까지 다 적고 그려놓고 나서
실제로 '작업'이라 부르는 것은 그것을 보면서 되도록 빠르게 끝내 버린다.
생각은 주로 틈의 시간을 이용한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하고,
점심 먹고 쉴 때, 가끔은 수업 중에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노트에 적고, 밤에 잠들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보고. 대충 그렇다.
그리고 작업은 저녁에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뒤 1시간 쯤 쉬고 작업을 시작한다.
새벽 1~2시가 되면 작업이 남아 있더라도 자거나 영화나 책을 본다. 작업은 다음 날 하면 되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주로 밤과 새벽에 작업을 하고, 마감 시간 전에 끝내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아무튼 다 달랐다.
그 속에서 하나의 마스터플랜을 짜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우리 팀은 다른 팀보다도 다들 의견 표현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다른 팀은 다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말이 많아서 의견 조율을 위해 티격태격 토론을 벌이는데,
우리 팀은 침묵 속에 다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욱이 그 2주 동안은 내가 건축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 건축에 대한 생각과 과제 작업을 가장 적게 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우리 팀은 이 설계 분반에서 가장 뒤쳐지는 팀이 되어 있었다.
난 그 상황을 참을 수 없었고(물론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나 혼자 마스터플랜을 짠다고 생각하되 이전에 들었던 팀원의 의견을 반영하여 내용을 발전시키고 표현할 포맷을 짜고 그랬다.
그 다음, "이게 마음에 들어요? 생각이 잘 반영된 것 같아요?"라고 물었다. 물론 이견이 있을 땐 반영하여 수정했다.
독선적인 걸 알지만 그렇게 했다. 기존의 방식대로 하다간 정말 낙제라도 할 것 같은 상태으니까.
더 좋은 의견 조율과 발전 방법을 생각하지 못 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포토샵 작업은 분량을 정하고 개인에게 분배해 작업했다. 물론 개인의 건강이나 사정에 의해 조금씩 조율은 있었다.
그 뒤,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해야했다.
그런 식으로 우리 팀은 약 2주의 뒤처짐을 지난 1주일동안 따라잡기 위해 발버둥쳤다.
우리가 다른 팀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다른 팀은 작업을 더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잠들기를 포기하고 작업했다.
나는 어서 끝내고 설계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발전시킨 내용이 너무 적고 정리가 안 되 있어서 교수님께 발전적이지 않은 크리틱을 받는 건 정말로 싫었다.
내가 받고 싶은 크리틱은 내가 열심히 생각과 작업을 해가서 교수님이 내가 한 것을 보완해주고 수정 및 발전을 위한 크리틱을 해주는 것이지, 내가 해 간 것 자체가 부족해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수정해야되는 짓은 정말로 싫다.
(하지만 가끔은 열심히 했는데도 그 사이에 모순이 생겨서 돌아가기도 한다. 후.)
대부분의 사람은 그 상황이 싫을 것이다. 그렇다면 열심히 해여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그걸 극복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든지. 작업물 자체의 질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그 생각자체가 발전되어 있으면 보통 교수님들은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렇게 넋두리를 심하게 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번엔 정말 좀 힘들었다.
김덕모 교수님 수업을 할 때도 바쁘긴했지만 나름의 재미와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번 마스터플랜 작업은 대체적으로 그냥 힘들고 갑갑했던 작업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내가 가장 힘들어가는 삶의 부분 중 하나이다.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한다. 나는 혼자인 것에 익숙하고, 아주 소수의 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타인에 대한 궁금증보다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더 많다. 나도 아직 나를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있고, 나의 성격과 태도에는 많은 모순이 존재한다. 그런데 어떻게 남을 이해할 수 있겠나 싶다. 나는 남을 배려할 줄은 알지만, 남을 이해하진 못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형제라도 있었면 더 잘 알 수 있었을까?
생각은 많지만 정리가 잘 안 되는 것이 팀작업을 통해 여러 사람과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같이 발전해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거의 산산히 부서졌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나와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성과는 있었다. 나와 남은 정말로 다르다. 정말로.
설계는 2인 1조인데, 그때는 더 재미있기를 다시 기대해본다. 나의 삶은 개인적 흥미 추구를 위해 존재한다.
재미있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