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INFOR.2010. 4. 10. 06:18
출처 : http://blog.naver.com/jangbin99/80008538981

都市開發의 歷史

 


1) 근대이전의 도시개발


  고대문명 발생시기


  고대도시는 나일(Nile)강, 티그리스 유프라테스(Tigris-Euphrates)강, 인더스(Indus)강, 황하(黃河) 등의 비옥한 하천유역에서 농경, 어획, 편리한 수상 교통을 기반으로 발생한다.
  고대도시는 정치, 군사, 문화의 중심을 이루면서 성장하였으며 집락(集落)의 규모가 커지고 발전하면서 부족간, 지역간에 종교 등으로 인한 분쟁과 대립이 빈번하였다.
  자체적 방어수단으로 보루형(堡壘形) 성벽이 축조되고, 집락의 지배계급과 지배자가 출현하여 권력을 강화하고 군림하였다.
  이 시기의 도시형태와 시설 등의 도시개발은 통치자의 의지가 반영되어 나타났으며, 노예경제를 바탕으로 세워진 전제군주제도의 채택과 하천과 관련된 토목기술 등의 학문에 의해 발달되었다.
  나일강 연안의 이집트(Egypt)는 세계 최초의 도시형태를 갖춘 고대왕국의 수도멤피스(Memphis)와 신왕국 테베(Thebes), 그리고 B.C. 3,000년경 피라미드 건설을 목적으로 노예, 기능인을 수용하기 위해 건설된 카훈(Kahun)이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주변의 장방형 성벽, 격자형, 가로망, 광장, 궁전, 신전, 공공건축물을 미관적으로 배치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어 강의 범람이 잦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방은 제방, 운하 등의 토목공사 기술이 발달하였고 관개농업이 이루어졌으며, 항해술의 발달로 상업이 성했다.
  대표적인 도시로는 B.C. 8세기경의 바빌로니아(Babylonia)의 수도 바빌론(Babylon)을 들 수 있다. 이 도시는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13km에 이르는 벽돌조 성벽, 왕궁, 신전, 포장도로, 성탑등이 장엄하고 화려했다.
  인더스강 유역의 모헨조 다로(Mohenjo-Daro)는 규격화된 소성벽돌이 사용된 계획도시로서 배수설비, 포장도로가 알려져 있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도시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폴리스(Polis)의 집합체로 구성된 그리스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평야지대에 위치했다.
  도시국가형태의 그리스는 지대가 높은 구릉지 언덕에 신을 모시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를 성역으로 만들었다.
  도시 중심부에 아고라(Agora)를 배치하여 시민들의 교역, 사교, 민주 정치장, 집회장으로 활용하였다. 아고라 주변에는 신전, 극장, 시청 등의 공공건물이 위치하였고 그 외곽으로는 중정식 폐쇄형 시민주거를 건설하고 주변에 성벽을 축소하였다.
  그리스의 도시들 중 아테네(Athens), 스파르타(Sparta), 코린트(Corinth) 등의 오래된 도시들은 불규칙하고 협소한 가로망의 형태였다.
  지중해 연안의 식민도시 밀레투스(Miletus), 프리엔(Priene),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등은 격자형 도로망을 바탕으로 세워졌으며, 도시시설 및 건축의 예술성이 찬란한 도시들이었다.
  그리스의 도시규모는 대개 인구 1만∼1만 5천명 내외였으며, 과잉인구는 지중해 연안으로 진출하여 건설한 식민도시에 수용하였다.
  식민상업도시의 계획에 있어서 기본이 된 것은 도시계획가 히포다무스(Hippodamus)에 의해서 발전된 격자형 도로망 패턴이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도시에서 시작된 격자형 도로망을 발전시켰던 것으로서 이를 바탕으로 도시의 자연적 상황을 고려한 도시구성계획을 시행하였다.
  지역제를 도입하여 주거지역, 공공지역, 상업지역을 구분하고, 도시하부구조인 상 하수도를 도시 내에 설치함으로써 훌륭한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리스시대의 도시들 중 가장 체계적인 격자형 가로체계와 도시구성이 이루어진 도시로는 올린투스(Olynthus)가 있다. 이 도시는 초기에는 불규칙적인 형태였으나 도시성장에 따라 5세기경에는 완전한 격자형의 도시체계를 갖추었다.
  로마는 정치적 조직체인 소도시국가연합체 성격의 그리스와 같이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형태를 기반으로 제국을 건설하였다.
  로마의 도시는 아고라에 해당되는 시민광장 포럼(Forum)을 중심으로 하여 불규칙한 방사형 도로와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Coloseum), 바실리카(Basilica) 극장, 카라칼라(Caracalla) 욕장(浴場), 판테온(Pantheon) 등의 신전과 개선문 등의 기념시설 및 공공건축물을 축조하였다.
  로마의 신도시는 주로 식민도시들로 이루어졌으며, 대표적인 도시유형으로는 콜로니아(Colonia)와 뮤니시피아(Municipia), 시비타스(Civitas) 등이 있다.
  군사기지의 성격을 지닌 카스트라(Castra)가 있었는데, 이 도시는 적의 공격시 군대의 보급기지와 본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병영도시였다. 이 도시의 특이한 점은 군대가 이동한 뒤 그 지역이 그대로 도시로 발전하여 현존하는 유럽도시의 기본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도시들은 정연한 격자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중심부에 행정중심이 배치되어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계획가로는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있다. 그는 주로 위생, 편리, 군사적인 고려에 중심을 두었으며, 그의 건축십서(Ten Books on Architecture)는 르네상스의 이상도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마시대의 도시들은 그리스시대에 비해 도시의 상 하수도 위생설비가 훌륭하게 구비되어 그리스시대의 도시들보다 도시수용인구가 더욱 확대될 수 있었다.
  비산업적 인구의 도시집중과 배급에 의존하는 국민과 노예, 그리고 정치인으로 구성된 산업구조의 불균형, 사치와 향락정치, 사회적 부패로 인하여 매우 불건전한 도시로 변모하였고, 5세기경 쇠퇴하였다.

 


  중세의 도시


  중세도시의 특징은 영주들 간의 영토확장 등 분쟁을 위한 도시형태로서 한 마디로 표현해서 성곽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중세도시는 다른 시대의 도시와 다른 폐쇄적 사회로 특징지어진다.
  방어수단의 교외 구릉지에 위치한 요새 및 성벽축조, 불규칙하고 굴곡이 심한 비포장의 가로망, 목조위주의 시민주거건축은 중세도시들의 대표적인 도시내용이 되었다.
  프란시스코(Francisco) 수도원을 비롯한 많은 성당건축물들은 석조, 벽돌조로 건축되어 예술성이 돋보였으며, 이에 따라 중세도시는 성당도시의 색채를 띠었다.

 

                                   (그림1) 엑스터(Exeter)               

                                   (그림2) 칼리스레(Carlisle)

 

  중세의 도시는 그 기능적인 성격으로 보아 일반적으로 성채도시(城砦都市), 정기시도시(定期市都市), 상업도시(商業都市) 등으로 구별할 수 있으나 도시의 규모는 대부분이 소규모로서 큰 도시라 할지라도 인구 10만명을 넘지 않았다.
  중세도시의 형태는 역사적 기원, 지리적 환경, 발전형에 따라 3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 로마제국시대로부터 계속되어온 도시로 보통 중심부에서 직교형 설계를 유지하고 도시의 발달에 따라 이 직교형 부분에서 서서히 외부로 향해서 확대된 것이다.

  둘째 : 그 이전의 문화를 뚜렷이 계승하지 않은 도시로 불규칙적이고 무질서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중세도시는 이러한 자연발생적 도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 계획적 설정도시(設定都市)로서 그 대부분이 격자형으로 설계되었고 중심부에 시장과 광장을 둔 것이다.
  도시의 위치선정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중세 초기의 도시들은 주로 구릉에 성곽을 구축한 성곽도시들로서 그 크기가 소규모였고 한정된 크기를 가졌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성벽을 도시의 주변에 건설하거나 토지를 획득하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종종 있었다.
  반면 중세 후기의 도시들은 주로 해안 및 하안에 위치한 상업도시들이다. 이는 중상주의를 바탕으로 한 당시의 대외무역이 선박을 이용한 해상교통에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후기의 도시들은 이전에 비해 보다 개방적인 도시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대표적인 상업도시로는 해상무역을 제패하고 동방제국과의 무역의 근거지였던 베니스(Venice), 십자군의 병참수송기지로 번영하였던 항구도시 제노바(Genova), 알프스산을 넘는 육상교통의 중핵이었던 밀라노(Milano), 공업과 금융업의 중심이었던 프로렌스(Firenze)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독일의 함부르크(Hamburg), 마인쯔(Mainz), 프랑크푸르트(Frankfrut) 등이 당시의 상업도시였다.

 


  근세의 도시


  농노(農奴)와 봉건주의(封建主義)를 바탕으로 한 중세국가는 대자본에 의한 중상주의(重商主義)와 대량생산, 그리고 공업화 등의 시대변화에 의해 쇠퇴하였고 근세는 국가경제형태로 변모하였다.
  14∼15세기에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 영향을 미친 르네상스(Renaissance) 운동의 결과로 기독교적 속박으로부터의 인간성 회복과 인본주의 정신의 강조, 신세계를 동경하는 문화확산, 그리스 로마시대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건축 등에 대한 복고의식이 강하게 나타났다.
  도시는 근세 화약의 발명으로 도시의 공격과 방어의 개념이 변화되면서 성벽과 같은 요새(要塞)위주의 도시건설이 지양되었다.
  공공정신과 도시 배경미를 강조한 르네상스 정신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형태면에서는 중심선과 축, 형식미, 건축미가 특히 강조되었다.
  15∼16세기경에는 많은 이상도시안들이 대두되었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폐쇄형으로 된 다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면의 형태는 대부분이 성형(星形), 8각형, 5각형 등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폐쇄형의 도시는 결국 도시의 수평적인 확대를 방해하여 당시의 많은 도시들이 높은 인구밀도를 나타내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어났다. 지배계급은 자기의 부와 권력을 자랑하기 위하여 도시의 형태에 강한 중심축을 가지고 좌우대칭으로 배치하는 기하학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도시미의 정형을 이루게 되었다.
  도로와 광장은 근세도시의 형태를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도로는 중세의 협소하고 굴곡이 심한 불규칙한 형태에서 가로에 접한 대지의 이용률 증대와 공동구 설치, 도로정비의 효율성 등 교통계획에 이점이 많은 격자형으로 전환되었고, 지형에 우선한 직선광로가 건설되었다.
  광장은 전정(前庭)광장, 시장(市場)광장, 기념광장, 교통광장, 근린(近隣)광장 등의 형태로 건설되었고, 조경 및 장식적 기념물 배치 등으로 도시미의 중심을 이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독일의 칼스루에(Karlsruhe)가 있다. 이 도시는 보루형 도시에 방사선도로를 도입하였는데, 왕궁을 중심으로 32줄의 방사선이 도시주변의 환상도로를 향하여 뻗어나게끔 설계되었다. 환상도로는 완원(完圓)을 이루고 있으며, 방사선은 직선도로로서 기하학적 형태로 짜여져 있다.
  근세 도시개발사에서 주목할 사항으로는 오스만(G. E. Haussmann)의 파리개조계획이 있다. 이 계획은 파리 가옥의 3/7을 파괴하는 철거위주의 방법으로 도시전체의 조직적인 개조가 저해되었지만 도시설계의 모든 구상을 현대도시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기술적인 문제로서의 공적은 컸다.

                                   (그림3) 하미나(Hamina)

                               (그림4) 칼스루에(Karlsruhe)

 

 


2) 근대의 도시개발


  근대도시개발의 흐름은 영국에서부터 근간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도시개발의 방향은 크게 전환되었는데, 도시가 인간의 경제적활동 및 사회적 활동의 장소로 파악되었고, 복잡한 도시기능을 갖게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인구와 산업의 도시집중을 치밀한 계획 없이 받아들여 엄청나게 비대해졌을 뿐만 아니라 주택문제, 교통문제 등의 사회문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19세기 후반의 이상주의적 도시개발계획에서 시작되었으며,
  20세기 초반의 전원도시 개발 및 근대도시운동의 전개를 통하여 현재의 신도시 및 도시재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도시의 발생과 도시개발


  산업도시는 산업혁명의 제 변혁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 당시의 급격한 변혁은 다양한 도시문제를 야기했으며, 이러한 도시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산업도시발전의 동기가 되었으며,
  농촌에서 도시로의 노동자 집중현상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였다. 급격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과 상업인구의 폭발적 증대는 과밀주거군인 슬럼가를 형성하였으며, 이로 인해 빈곤 및 위생문제 등의 사회적 문제가 유발되었다.
  도시의 과밀주거는 도시의 스프롤(sprawl) 현상을 유발하였고 그 결과 도시의 무질서한 거대화가 야기되었다.
  이러한 상황하에 도시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상도시계획안들이 속출하였는데, 이들 계획들 중 대표적인 계획으로는 레도우(Ledoux)의 쇼우(Chaux)와 오웬(R.Owen)의 공장촌계획, 푸리에(C.Fourier)의 팔란스테르(Phalanstere), 버킹험(J. S. Buckingham)의 모델도시 빅토리아(Victoria), 솔트(T. Salt)의 솔테어(Saltaire), 리차드슨(Richardson)의 헤이지아(Hygeia), 풀만(Pullman)의 모형도시(Model Town), 소리아 이 마타(A.Soria YMata)의 선형도시(Linear City), 가르니에(T. Garnier)의 공업도시(Une Cite Industrielle) 등이 있다.

                                      (그림5) 쇼우(Chaux)         

                                  (그림6) 빅토리아(Victoria)

 

  산업혁명과 때를 같이하여 발생한 도시문제가 자유방임주의와 자유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나타난 것이었기에 본질적으로 자유방임주의와 자유경쟁 속에서 도시문제해결은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도시안들은 현대도시의 공간적 구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오웬의 이상도시안은 현대적인 도시기능에 부응하기 위하여 제안된 전원도시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전원도시의 전개와 그 영향


  영국의 근대도시화과정에서 표출된 것은 도시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산업시설의 집적지에 혼재함으로써 나타난 도시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이었다.
  1898년 하워드(E. Howard)는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으로 건강생활을 유지하면서 도시민에게 작업과 여가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전원도시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전원도시의 구성은 58,000여명의 소도시 인구규모로서 방사 환상형의 시가지 패턴을 갖고 있다. 토지이용과 시설배치의 형태는 첫째, 중심부에 광장, 시청, 박물관 등의 공공시설이 배치되고 둘째, 면적 400ha의 중간지대에는 주택, 학교, 교회가 배치된다. 셋째 2,000ha 규모의 농경지대로 구성된 시가지 외주부는 임대농장, 대농장, 목초지 등으로 구성된다.
  하워드의 이러한 전원도시계획안은 후에 위성도시 및 근린주구이론, 나아가 신도시개발의 밑거름이 되었다.
  개발이익의 사회환원과 토지소유의 공유, 지역제의 시도와 전원적 도시환경의 유지를 위한 녹지설정 등의 계획내용은 근대적 도시개발의 계획수법에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하원드의 계획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불러일으킨 바, 1904년에는 런던에서 54㎞ 떨어진 곳에 최초의 전원도시인 레치워스(Letchworth)가 언윈(R. Unwin)과 파커(B. Parker)에 의해 건설되었다.
  1920년에 두 번째의 전원도시인 웰윈(Welwyn)이 런던 북쪽 36㎞ 지점에 건설되었다.
  하워드의 전원도시운동은 당시의 대도시 인구집중에 대한 인구분산정책의 해결방안이 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교통의 발달과 지역적 확대로 근본적인 개발방향으로는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웰윈에서 계획의 현실성과 개발의 합리성을 제시하여 정부 당국으로부터 도시분산정책과 신도시개발정책의 하나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1946년에 신도시법(The New Towns Act)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전원도시운동의 파급효과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나라의 근대적 도시개발의 방향 제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며, 각국에서 위성도시 및 신도시의 개발방향으로 계승되었다.

                             (그림7) 하워드의 전원도시계획안      

                                    (그림8) 웰윈(Welwyn)


  위성도시(satellite town)의 개념이 처음으로 근대도시계획에 대두된 것은 1918년으로 전원도시운동의 주창자들에 의해서였다.
  위성도시는 중심도시로부터 그린벨트에 의해 지리적으로 분리되면서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중심도시로 연결된 독립도시를 의미한다. 즉 모도시(mother town) 주변에 입지한 단일성격의 중심을 가진 소규모의 도시로서 모체도시의 기능을 보완하는 위성과 같은 도시를 말한다.
  1920년대에 위성도시안을 제안한 사람들은 테일러(G.R. Taylor), 언윈(R.Unwin), 휘이튼(R.Whitten), 라딩(A.Rading) 등이 있다. 미국의 테일러는 점차 능률이 저하되는 대도시에서 교통이 편리한 주변지역으로 기존 도시의 공업시설 이전을 주장하였다. 그는 새로운 공업지 인근지역에 산업 종사자의 주택을 중심으로 하는 주택지개발과 아울러 도시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도시개발을 주장하였으며, 이를 위성도시라고 하였다.
  도시구성을 위한 생활권형성개념에 따르면 위성도시는 일생활권(日生活圈)에 필요한 소요 도시서비스를 해결하고, 여타의 주생활권 서비스는 중심도시인 모도시에서 제공함을 원칙으로 계획되었다. 그후 1923년 미국의 휘이튼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광역계획구상에 위성도시의 계획수법을 적용하여 대도시계획안을 작성 발표하였다.
  위성도시의 기본계획구상은 하워드가 제창한 전원도시에서 근간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전원도시가 전원 속에서 일상생활을 위한 자급자족의 신도시라 할 때 위성도시는 대도시 주변에 별도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대도시를 모체로하여 기능의 일부를 분담하는 예속된 신도시를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도시미운동과 근린주구 단위계획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은 거대한 공업화의 물결 속에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도시들은 오염되고 도시생활은 매우 불안전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계획가 번햄(D. H. Burnham)은 거대한 공업도시의 추악함은 도시예술의 훌륭한 작업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만국박람회장의 설계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그는 도시를 아름다움과 질서, 체계, 조화를 통해 예술적으로 계획했으며 고전적인 미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도시미운동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
  도시미운동은 1900년에서 1910년에 미국의 도시계획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도시의 아름다움을 통한 개발뿐만 아니라 문화적이고 예술적이며 환경적인 도시개발운동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의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등은 고전적이고 화려하며 예술적인 도시미를 갖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동차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하워드의 전원도시사상을 추종한 미국의 스타인(C. Stein), 라이트(H. Wright), 멈포드(L. Mumford)와 같은 계획가들은 도시내 자동차의 급속한 증가 속에 자동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여 왔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안된 1923년의 슈퍼블럭(super-block)개념은 기존의 격자형 도로를 제거하여 12∼20ha 규모의 자동차 없는 주거환경을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1928년 미국의 페리(C. A. Perry)는 근린주구를 지역성이 유지할 수 있으며 영국의 작은 마을처럼 민주적인 참여가 가능한 하나의 사회단위로 인식하였다.
  모든 건물로부터 4분 거리의 중심부에 커뮤니티 센터와 학교, 기타학원을 갖춘 5,000명 규모의 독립적인 근린주구를 주장하였다.
  근린주구는 밀도가 100/ha 이내의 주구에 도로가 단지내를 관통하지 않는 가구(街區)로 되어 있다. 또한 가능한 한 보차분리를 시키며, 단지내 통과차량을 저지하기 위하여 도로는 대개 쿨데삭(cul-de-sac)이나 루프(loop)형으로 이루어진다.
  근린주구 기본사상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초부터 주택지계획의 공간 구성에 관한 이론전개와 시행계획을 구축한 스타인과 라이트에 의해서였다.
  하워드가 영국에서 전원도시운동에 전념하고 있을 때, 스타인은 적은 규모의 주택지개발에 보다 구체적이고 진취적인 방법으로 계획이념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림9) 페리의 근린주구이론        

                                (그림10) 래드번 종합개발계획

 

  미국의 도시지역은 기술문명의 이기(利器)이며 산물인 자동차에 의한 환경파괴의 위협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스타인과 라이트는 도시생활의 안전을 꾀하고자 1928년 래드번(Radburn)계획을 실현하였다.
  래드번 개발계획은 주택, 도로, 공원 녹지공간, 건물 블록 및 주구중심지와의 관계를 과거의 공간구성과 배치개념에서 탈피하여 슈퍼블럭의 계획, 기능별 도로망계획, 보차분리 등의 새로운 기본구상이 도입되었다.
  근린주구의 기본이념은 근대도시의 주택지계획과 나아가 신도시개발계획의 기본적 요소가 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1944년 아버크롬비(P. Abercrombie)는 대런던 계획(Greater London Plan)의 수립에서도 커뮤니티 계획의 중요 내용이 근린주구개념이라고 하였으며, 이를 위해서 주구의 규모를 인구 6,000∼10,000명으로 계획, 한 개의 초등학교를 배치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1963년 주구내의 생활안전과 편리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개발된 계획인구 11만 명의 콜롬비아(Columbia)도 페리의 근린주구이론의 적용에 충실하였다.

 


  근대도시운동의 전개


  전원도시사상에 대한 반발로서 르 꼬르뷔제(Le Corbusier)와 기디온(S. Giedion)등에 의한 새로운 도시형태가 제안되었다. 르 꼬르뷔제는 영국의 전원도시에 대하여 도시확장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토지와 도시개발의 시간적 낭비를 초래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1922년 인구 300만 명의 대도시계획안을 발표하였다.
  그가 주장한 이상도시는 광대한 오픈스페이스에 둘러싸인 장대한 마천루(skyscraper)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였다. 도심에는 3,000명/ha의 인구를 수용하는 60층의 건물이 숲을 이루고 그 건폐율은 불과 5%로서 중심에는 철도나 비행기를 위한 교통센터가 배치되었다.
  마천루 주변에는 아파트지구가 있어 8층의 연속주택이 광대한 오픈스페이스 속에 이것을 둘러싸듯이 배치되었으며, 인구밀도는 300명/ha였다.
  1925년에 그는 이 계획안을 파리중심부를 위한 개조계획인 보아잔 계획(Plan Voisin)에 적용했고, 1933년 빛나는 도시(Ville Radieuse)의 계획에서도 이 발상을 전개하였다.
  르 꼬르뷔제의 계획사상은 당시의 많은 도시계획가와 건축가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그를 중심으로 1928년 근대건축국제회의(CIAM ; Congres Internationanxd'Architecture Moderne)가 개최되었다.
  르 꼬르뷔제는 도시를 '살고', '일하고', '위락하고', '교통하는' 네 가지의 기능화를 통해 태양과 녹지와 공간을 다시 사람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빛나는 도시를 건설하려 하였다.
  초기의 CIAM의 구성원들은 공론가(空論家)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였으나, 이들에 의해 시작된 도시계획의 수법으로는 지역지구제, 인동간격, 그린벨트, 보차분리, 근린주구, 건물의 고층화 등이 있다.
  CIAM의 정신에 의해 세워진 대표적인 도시로는 샹디가르(Chandigarh)와 브라질리아(Brasilia)가 있다.
  샹디가르는 르 꼬르뷔제가 직접 계획한 도시로서 인체의 모습에 바탕을 두어 계획되었으며, 도로는 각각의 성격과 스피드에 따라 분리한 V7원리에 의해 계획되었다.
  브라질리아는 코스타(L. Costa)의 기본계획으로 건설되었으며, 비행기의 모습에 바탕을 두어 기본형태가 결정되었다. 이 두 도시는 CIAM의 사상, 특히 1933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4회 근대건축국제회의 주제인 '기능적인 도시'를 충실히 적용한 것으로서 30년에 걸친 CIAM운동의 종합적인 결산이었다.

                                       (그림11) 샹디가르              

                                     (그림12) 브라질리아

 


  신도시의 개발


  신도시(new town)는 영국에서 발단된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대도시를 모도시로하여 근교에 새로 개발된 도시 등을 말할 수 있으며, 건설목적은 각 나라의 국내사정과 시대의 요청에 따라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영국의 신도시 개발 사례는 여러 국가의 도시계획가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어 왔다. 이는 영국의 일부 계획, 예를 들면 아버크롬비 계획(Abercrombie Plan)과 신도시 건설이 대단히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토개발이라는 국가정책 및 이를 근거로 계획된 도시계획 정책의 일환으로 구상된 신도시들 역시 주목할 만한 집중적 도시계획 사업중의 한가지이다.
  영국의 신도시 정책은 대중적 토론과 지지의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발전된 종합적인 계획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에는 전원도시협회(Garden City Association)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899년 하워드에 의해 설립되고 후에 도시농촌계획협회(Town and Country Planning Association)로 개명된 전원도시협회는 지속적으로 대도시에서 교외지역으로의 확산을 반대하였고, 신도시조성에 의한 과밀억제에 찬성하여 법안통과에 노력하였다.
  1940년에 바로우 위원회(Barlow Commission)는 산업인구의 배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런던에서는 더 이상의 산업 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런던 과밀지역의 분산이 국토개발이라는 국가정책의 시급한 요소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였고 이러한 전망 아래 전쟁이 끝날 무렵 아버크롬비의 대런던계획이 수립되었다.
  1944년의 아버크롬비의 대런던 계획은 런던 주위에 환상의 그린벨트를 설치하고 그린벨트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이다. 대런던 계획은 런던을 중심으로 4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8개의 신도시를 건설하여 과밀된 도시권의 인구를 분산시키고자 한 계획으로서 실제로 런던에서 32∼40㎞ 떨어진 곳에 할로우(Harlow), 스티브네이지(Stevenage) 등 8개의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할로우는 1947년에 기버드(F. Gibberd)에 의해 계획되어 런던북쪽 약 48㎞지점에 부지면적 2,450ha로 개발된 초기 신도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현재까지 총 34개의 신도시를 건설함.)

                                     (그림13) 대런던 계획           

                                     (그림14) 할로우 신도시

 

  미국의 신도시개발은 1930년대의 뉴딜정책 수행시기에는 일종의 그린벨트 커뮤니티로서 생산입지를 억제하고 전원도시적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이후에는 대도시인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대도시의 인구집중을 막고 주택공급을 위해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일본의 신도시개발은 대부분 대도시에서의 주택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재부흥과정(戰災復興過程)에서 대도시로의 인구급증 현상으로 인해 동경 등 대도시는 극심한 주택난과 택지난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고 대도시의 질서 있는 발전을 도모하고자 대도시주변에 주택도시의 성격을 가진 도시를 개발한 것이 일본의 신도시개발이다.
  우리나라에서 신도시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라 할 수 있으며 크게 두 가지 정책목표에 의해 추진되었다. 먼저 경제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공업단지조성에 따른 산업기지 배후도시로서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울산, 포항, 구미, 창원과 여천 등의 신도시들이 이러한 이유에 의해 건설되었다.
  수도권의 과밀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서울의 공해공장 이전을 위해 건설된 반월 신도시, 수도권의 주택공급 및 인구분산을 위해 건설된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개 신도시들이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도시재개발


  도시재개발은 현대사회에 적응할 수 없게 된 도시의 환부를 도시의 기능과 환경의 개선이라는 계획적 의도 하에 다시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 있어서의 도시재개발은 1949년과 1954년 주택법(Housing Act)에 그 상세한 내용들을 기술하고 있다.
  1958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도시재개발에 관한 제1회 국제세미나에서는 도시재개발을 지구재개발(redevelopment), 지구수복재개발(re-habilitation), 지구보전재개발(conservation)로 정의하였다.
  도시재개발은 도시의 기능과 환경의 유지 및 향상 도모라는 공통목적을 갖고 있으나 각각의 재개발사업은 도시구조의 개혁이라든지 중심시가지의 직주근접촉진, 공공시설의 정비, 도시의 방호, 방화, 상가재개발, 시가지 환경정비 등의 다양한 목적을 가질 수 있다.
  도시재개발의 사례로는 런던의 바비칸(Barbican)지구 재개발계획이 있다. 바비칸은 런던의 중심가에 있으며 중심상업지구로 발전한 지역이었다.
  바비칸 재개발은 실제로 2개의 바비칸지역 계획사업이었는데 하나는 면적이 63acre되는 지역으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황폐지가 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런던대교의 바로 동쪽 템즈강에 면한면적 28acre의 지역이다.
  이 사업은 고층건물을 가진 고밀도 계획이었다. 주된계획개념은 다층교통체계(multilevel circulation system)로서 지상에서 높이 설계된 보행자도로가 계획건물의 여러 곳과 연결된다. 계획목적은 도심지구의 인구감소를 중지시키고 도심업무시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며, 문화시설을 확충하는 것 등이다.
  이 사업은 모든 현대도시가 느끼고 있던 전후(戰後)의 자동차의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의 많은 계획가들의 시선을 끌었다.
  미국의 사례로는 볼티모어 도심부의 경제적 낙후를 방지하기 위해 계획되어 1969년에 완성된 찰스 센터(Charles Center)가 유명하다. 이는 부지 약 12ha로서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 2개의 재래도로가 있으며, 지구의 일제화를 기하기 위해 보차분리를 하여 남북을 보행자 데크로 연결하고 이를 지구 전체의 축선(軸線)으로 하였다.
  주요기능으로는 북쪽에 고층아파트에 의한 주택군과 쇼핑센터, 그 남쪽 광장을 둘러싼 사업소와 호텔, 상점, 극장 등이 있으며, 서쪽으로 인접해서 시민회관이 있다. 주차장은 모두 지하에 설치되어 있다.

 


3) 현대의 도시개발


  산업혁명이후부터 시작된 도시화는 20세기에 들어 급속히 진전되었다. 특히 20세기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대도시화의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고 이로 인하여 오늘날의 도시들은 다양한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인구와 자본 그리고 여러 가지 도시적 기능들이 급격히 집중 확대되면서 기존의 도시정비나 기구로는 양적, 질적, 시간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와 부담에 대하여 충분한 대응을 할 수 없는 불균형상태가 발생하였다.
  과밀과 집적으로 인하여 도시에서 배출되는 여러유해환경물질이 증가되었는데 현재의 대도시내의 환경오염은 이미 자연의 자정능력을 넘어선 단계에 있다.
  중심기능의 쇠퇴와 기능의 이전으로 인하여 중심지역의 황폐화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의 도시개발은 전술한 대도시가 갖는 다양한 문제점 해결과 함께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 경제 문화현상 등에 대한 대응책이자 해결책으로써 여러 방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새로운 도시계획개념의 대두


  유럽에서의 산업혁명 이후 사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통해 지속적인 도시건설이 이루어져 인구 100만명 규모의 대도시들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최초로 런던이 1810년에 인구 100만명의 도시가 되었고 파리는 1846년에 뉴욕은 1860년대에 100만급 도시가 되었다.
  대도시는 오늘날 세계 도처에 그리고 저개발의 제3세계로부터 개발도상국,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지역에서 등장하고 있다.
  거대도시(megalopolis)는 공간적으로 밀집된 대도시권들 사이의 강력한 경제적 연계를 바탕으로 나타난 새로운 도시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재화, 그리고 원격통신의 왕래가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짐으로써, 거대도시는 공간적으로는 분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은하계처럼 일련의 고립된 인구집중 지역들이기보다는 거대한 하나의 도시로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세계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의 도시집중 역시 이러한 거대도시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의 루르(Ruhr)지역, 네덜란드의 란트스타트(Randstad)지역, 일본의 훗카이도(東海道) 메갈로폴리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환경문제와 도시계획


  현대에 있어 환경친화적인 도시개발이 과거와 구분되는 점은 첫째, 과거 환경문제와 관련된 도시개발은 자연환경과 도시가일원화된 상호공존의 성격을 띄기보다는 도시중심의 개발이었던 점에 비하여 현재는 도시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인식 하에 상호공존을 위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기존의 개발이 도시별, 국가별로 상황에 따른 국부적인 개발로 진행됨에 비하여 현재는 전세계적 공감대 속에 범지구적 환경보전을 위한 포괄적인 실천계획이 수립되고 이에 따른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들어 도시화에 따른 주거, 환경, 빈곤의 문제는 세계적인 과제로 부각되었다.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는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환경 및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인류복지와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
  인간정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에 들어서 ESSD (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개념이 대두되었으며 뒤이어 1992년 유엔인간정주회의(UNCED)에서는 의제 21(Agenda 21)이 채택되었다.
  의제 21은 ESSD에 비해 보다 구체적인 차원의 국가별 행동강령으로 수립되었다.
  1996년에 발표된 HABITAT Ⅱ는 주거문제를 도시문제와 연계하여 환경, 사회개발, 인구, 여성문제 등과 함께 범지구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범지구적 행동지침이다.
  HABITAT Ⅱ는 첫째, 도시화 문제를 국제적, 국내적 개발계획에서 우선 순위에 놓고 둘째, 도시관리와 주택개발에 있어 새로운 정책과 전략을 추진하며 셋째, 도시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환경친화적 개념에 의해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도시개발로는 컴팩트시티(compact city) 개발과 생태도시(eco-city)개발 등이 있다.
  컴팩트시티개발이란 전원도시론과 같이 교외지역 주거지역을 저밀도로 확산시키는 개발방식 대신 시가화된 기존의 도시 또는 신도시로 설정된 지역을 고밀도로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자연자원의 무분별한 훼손을 막고, 직주근접을 통하여 교외지역에서 발생하는 교통량을 최소화함은 물론 인프라 및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컴팩트시티개발은 다수의 교외지역에 확산된 개발보다는 소수의 고밀개발을 통하여 환경에의 부하를 최소화하고 정주지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방만한 교외확산을 방지하고 개발지역을 고밀도로 이용함으로써 미개발지를 보호할 수 있게 되어 자연생태계에 대한 부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컴팩트시티개발은 공원, 정원 등과 같은 녹지공간의 부족을 초래하여 거주민으로부터 자연과의 원활한 친화를 빼앗기 쉽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컴팩트시티개발의 과제는 자연환경보전과 도시개발의 관계 속에서 적정개발밀도를 도출하는 것이다.
  생태도시개발이란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적인 체계로 보고 도시의 다양한 활동이나 구조를 자연의 생태계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 자립성, 순환성에 가깝도록 계획하고 설계하여 인간과 환경이 공존하는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생태도시개발은 첫째, 인간생활에 있어서 기반임과 동시에 자원인 환경을 현명하게 보전 이용함으로써 장기적이고 계속적인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하며 제한된 자원의 사용에 있어 차세대를 고려한 도시개발이다. 둘째, 인간과 환경사이의 총체적인 관계를 인식한 뒤 인간생활의 무대로서의 도시를 환경으로 보다 바람직
   하게 조성하여 적극적인 개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시개발이다. 셋째, 지구적인 환경제약 아래 고도산업화 사회와 환경과의 조화를 모색하고 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도시구조와 기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한 환경보전형 생활양식의 실현을 달성하는 도시개발이다.
  생태도시개발은 그 규모에 있어서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50만∼100만이 하나의 기준으로 제안되고 있다.
  생태도시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대표적 도시로는 독일의 니더작센(Niedersachsen)주와 일본의 고베시, 미국의 데이비스(Davis)시 등이 있다.

 

 

  도시활동의 변화와 도시개발


  현대의 도시개발 방향은 특정 기능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버타운개발, 테크노폴리스개발, 관광휴양지개발, 정보화도시개발 등이 그 예이다.
  개발종류의 세분화는 사회현상 및 도시활동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서 점차 도시가 개성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버타운개발은 인구의 고령화, 고령자의 경제력 향상, 복지서비스 수요의 고급화와 동양의 경우 부양의식과 가족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
  실버타운은 노년층에 있어 노년기의 삶의 질을 높여 주기 위해 신체적 특성에 맞는 건물설계와 서비스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계획된 노인집단주거 중심의 도시를 의미한다.
  실버타운은 입지적 특성에 따라 도시형, 도시근교형, 전원 휴양형으로 나누며, 대표적인 개발사례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레저월드(Leisure World)와 엔젤스 프라자(Angeles Plaza), 일본의 로얄라이프 다마 등이 있다.
  테크노폴리스 개발은 지역의 문화전통과 자연환경에 첨단기술산업의 활력을 도입하여 '産'(첨단기술산업군), '學'(학술연구기관), '住'(쾌적한 생활환경)의 세가지 기능이 잘 조화된 도시조성을 실현하여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정주체계를 달성하고자 한 개발이다.
  개발은 지역의 지식집약화와 높은 부가가치를 얻는 산업정책전략인 동시에 인구 및 산업의 지방 분산을 꾀하고 지방의 자립적 발전기반을 구축하여 국가발전의 성장거점을 확립하려는 지역개발이라 할 수 있다.
  유사한 개발로는 연구학원도시개발, 테크노파크개발, 업무단지개발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개발사례로는 일본의 테크노폴리스군(쓰쿠바)과 미국의 실리콘 밸리, 우리나라 대덕연구단지 등이 있다.
  관광휴양지개발은 장기체재를 전제로 일정 규모의 양호한 자연조건을 가진 지역에 레크레이션, 스포츠, 상업, 문화, 숙박 등을 위한 시설들이 복합적으로 갖춰져 인간의 휴양 및 에너지 재충전을 목적으로 구성된 지역 혹은 시설들에 대한 개발이다.
  관광휴양지개발은 국가마다 국민들이 즐기는 스포츠, 여행, 휴양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관광휴양지개발로는 프랑스 Languedoc-Roussillon지역과 일본의 화원촌 관광산촌, 싱가포로의 Buran Darat지역, 미국의 Lake Pineloch Village 등이 있다.
  텔레포트시설을 갖춘 정보화도시의 개발을 고도정보사회의 도래라는 시대의 요청에 의해 등장한 개발로서 정보통신기지로서의 역할은 물론 도시개발의 중핵으로서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국제적 정보도시건설을 급속히 추진하고 있는데 일본의 인텔리전트시티 구상과 동경수도권의 인텔리전트빌딩 네트워크 구상(IBNET구상) 등이 대표적인 개발사례이다.
  급격하게 지식화, 정보화로 치닫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의 도시발전 방향 역시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인 대처가 긴요하다. 따라서 정보화도시개발은 각국 도시개발정책의 중심 핵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전술한 개발유형 이외에도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도심의 주거기능 활성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고 리우환경회의 결과로 친환경적인 도시개발과 압축도시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활성화된 복합용도개발 그리고 세계화시대의 국가 및 도시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단지개발 등도 최근의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등장한 개발유형이라 할 수 있다.

Posted by 살구I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