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2010. 9. 23. 22:38

살면서 작거나 큰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어떤 것은 해결이 되기도하고, 어떤 것은 품거나 묻어두고 살아간다.

3학년 때까지 학과 공부를 하면서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더 컸던 것 같다.
내 시간이 별로 없고, 잠을 이따금씩 못 자더라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할 수 있다.'정도의 마음이었고,
내가 가야할 길, 해야할 일이라 생각하고 나름대로는 잘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설계도 열심히하면 될거라 생각했다. 나는 거의 절대적으로 아버지의 영향권 아래에서 살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난 정작 나의 삶을 깊이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았을 뿐.

하지만 휴학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휴학이었고, 내가 원했던 유학이었는데. 세상엔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고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귀퉁이 중 한 모퉁이를 경험했을 뿐인데.
나의 내부의 무언가가 변했고, 그것은 아직도 긍정적인지 부정적인 변화인지 알 길이 없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길을 가기가 막막했다. 아버지의 의지에 어긋난 의견을 말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애정과 보살핌, 금전적 투자를 나는 조금은 불편하게. 그리고 어서 갚아야되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하지만 이대로 빨리 졸업하고 아버지의 영향권을 벗어나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살고 싶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물론 입시 때, 건축을 선택했던 것은 나였고. 아버지는 그러라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다른 길을 가면, 아버지의 5년간의 금전적 시간적 투자와 내가 건축이라는 한 길을 계속 가서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배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은혜는 갚아야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졌다.
자기개발서에서 말하 듯, 나의 목표와 내가 원하는 것들을 수차례 적고 순서를 고민해봤지만,
거기에 '건축'이란 단어는 쉽사리 적히지 않았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가 건축을 하는 모습. 그것은 꿈꿔지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나에겐 아버지란 두려운 존재였으며,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숨죽이며 살아왔다. 그것은 나의 성격의 문제이기도 하며, 아버지의 내가 똑바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정작 나와 잘 소통하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소통의 문제다.

난 살면서 최선을 다했던 순간이 별로 없다. 시간이 흐르는대로, 주변에서 바라는대로 순탄하지만 열정이 결여된 삶을 살았다.
내가 집중했던 순간은 지금도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대충해도 아주 실망스럽지는 않은 결과가 나왔고, 난 거기에 대충 만족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원래 감흥이란 것이 좀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난 아주 특정한 것에만 반응한다. 더군다나 나는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 시스템에 잘 적응할 수가 없었다. 시스템이 잘 못 된 것인지, 내가 부적응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대학. 건축학과에서 보내 온 시간은 내가 살아오면서 그나마 가장 충실히 보내온 시간이다.
그것은 소중하고, 나에게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건축은 나를 열중하게 만든다.
건축학과에서 공부하면서 조금이나마 '끈기'와 '열정'에 대해서 배웠다.
하지만 이 길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실무까지는 부딪혀보기로 마음먹었지만..사실 잘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뿐인 삶에서 죽기 전에 혹은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내가 원하는 것에 도전하는 것이 어때서?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내가 '좀 더 쉽게' 성공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명성과 금전적 여유를 포함한다.
하지만 나는 성공이란 개념이 아버지와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는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아직 어려서..뭘 몰라서 이런 편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그게 또 나쁠 것은 없지 않나 생각한다.
예전이었다면 꿈도 못 꿀 이야기지만. 이 사실을 알면, 아버지는 날 외국에 보냈던 것을 만족할까, 후회할까?

사회적 패배자의 변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성공하지 못 한 자의 변명.
하지만 이 사회가 지향하는 성공이 진정한 성공인가?
사람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이 '조금 더 인생을 즐기면서 살 걸,'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사회적 성공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난 그냥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게 그 사람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라면.
하지만 그 방식으로 삶을 즐길 수 없다면? 그 방식을 정하는 건 나의 자유가 아닌가?
물론 나는 성공하고 싶다. 다만, 그것이 건축을 통해서인지.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

나에게 드리워진 아버지의 그림자는 두텁고, 따뜻하고, 안락하며, 크다.
난 거기에 안주하며 살았고, 그 보호에 바르게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내부의 목소리가 커져가며 아버지와 어렵사리 '대화'라는 것을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아주 작은 변화지만,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나는 아버지에게 무한히 감사하고 있고, 아버지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 영원히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본인이 항상 말씀하셨든 언젠가 나는 혼자가 된다.
한없이 차가운 말이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아버지에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 준 사실. 그렇기에 아버지는 내가 빨리 성공하길 바라는 거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나의 삶이 내가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때에 가서 '아, 그때 내가 다른 삶을 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하고 상상하고 후회하느니, 저질러 보고 싶어졌다. 그나마 날 지켜보는 아버지가 있을 때. 내가 넘어져도 지탱해 줄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내가 잘 못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하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어느 기점을 이후로 변했고, 그 변화는 우연 혹은 필요였든 일단 일어났다.
결정하는 건 나. 결과를 감당하는 것도 나.
이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친구와 도중에 한동안 통화했더니 글을 쓸 의지를 잃어버렸다.
이 글은 누가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쓰진 않았지만, 밤엔 늘상 그렇듯 공개로 남겨둔다.
내일이 되면 비공개로 바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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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ISUE